[인터넷 이디엄]<113>대나무숲

특정 업종 종사자들이 업계의 애환과 종사자로서의 불만을 익명으로 털어놓는 온라인 해방 공간.

주로 트위터에서 `∼ 옆 대나무숲`이란 이름의 계정으로 존재한다. `출판사 옆 대나무숲`이란 이름의 트위터 계정을 시작으로, `IT 회사 옆 대나무숲` `병원 옆 대나무숲` `촬영장 옆 대나무숲` 등 업종별 대나무 숲이 우후죽순 자라났다.

오랜 학업을 이어가는 박사 과정이나 전임 강사의 공간인 `우골탑 옆 대나무숲`이나 인턴의 애환을 얘기하는 `인턴 옆 대나무숲`을 비롯해 `신문사 옆 대나무숲` `시댁 옆 대나무숲` 등 분야도 계속 다양해지고 있다. 임금님 전속 이발사가 대나무 숲에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치며 답답함을 풀었다는 옛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직장인이나 `을`로서 겪는 말 못할 설움과 회사에 품고 있는 불만, 진상인 상사나 왜곡된 사회 구조를 고발하는 내용과 불평이 주로 올라온다. IT 회사 옆 대나무숲에는 `밤샘해 개발 마치면, 다음엔 그게 기본 일정이 된다`며 열악한 개발 환경을 한탄하는 트윗이 많다. `친구들이 애니팡 재미있다고 난리인데, 나는 속이 타들어간다`는 트윗도 있다. 고객센터 옆 대나무숲에선 `툭하면 대표 바꾸라는 고객이 있다`는 고백을, 촬영장 옆 대나무숲에선 인기 아이돌의 망나니 행동에 치를 떠는 이모뻘 작가의 분노를 엿볼 수 있다.

계정 비밀번호를 공개해 누구나 익명으로 트위터에 접속해 글을 올릴 수 있다. 비밀번호를 공유하기 때문에 누군가 계정을 없애거나 악의적인 허위사실로 도배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몇몇 대나무숲 계정은 이런 이유로 사라졌다.

대나무숲은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직장인과 `을`, 특히 지식노동자의 현실을 보여준다. 지식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상사와 `갑`의 부당한 처사를 감내하는 그들의 외침이 바람을 타고 대나무숲에 울린다.

대나무숲은 소셜 네트워크로 사회 문제를 드러내고 해결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일회성으로 불만을 쏟아내는 데 그쳐선 곤란하다. 현실 개선으로 이어져 대나무숲이 을도 대접받는 `을왕리`로 바뀌도록 노력할 때다.

*생활 속 한마디

A:회장님이 김 실장에게 안드로메다에서 480인조 걸그룹을 꼭 성공시키라고 압박하고 있어요.

B:회장실 옆 대나무숲이라도 가꿔야겠군요.


한세희기자 hah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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