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만의 體認知]<178>광고계의 전설 ‘데이비드 오길비’

`38세 실업자입니다. 대학을 중퇴했습니다. 요리사, 세일즈맨, 외교관을 거쳐 농사도 지어봤습니다. 마케팅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카피는 써보지도 않았습니다. 광고가 재미있어서 업(業)으로 삼겠다고 결심했고 연봉 5000달러를 희망합니다.`

이 사람을 채용할 광고대행사가 있을까. 런던의 한 광고대행사가 고용한 그는 3년 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카피라이터가 되었으며 이후 세계에서 열 번째로 큰 광고대행사를 설립했다. 그의 이름은 데이비드 오길비(David Ogilvy·1911~1999)다. 그는 세계적인 광고대행사 오길비 앤드 매더(Ogilvy & Mather)의 창립자이자 1950년대 이후 광고계 번영을 이끈 `현대 광고의 아버지`다.

그는 고전학자이자 중개인이었던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몹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옥스퍼드대학교에 들어갔지만 우울증으로 시험에 낙제하고 퇴학당했다. 노동으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프랑스 파리로 가 마제스틱 호텔 주방에서 조리사로 일하다가, 1935년 영국 스코틀랜드로 돌아와 조리용 난로 외판원으로 일했다. 주목할 만한 판매 수완을 발휘하던 그는 회사의 권유로 외판원용 가이드북을 만들었고, 그중 한 부를 형이 일하던 런던의 광고대행사 매더 앤드 크로더(Mather & Crowther)에 보낸 것을 계기로 광고계에 입문했다.

1948년 오길비는 미국 뉴욕 매디슨가에 오길비 앤드 매더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설립자의 의지가 담긴 명확한 사업 철학을 토대로 현재 100개국에 약 359개의 지사를 둔 존경받는 세계 기업으로 발전했다.

무수한 시행착오 끝에 찾은 한 줄기 빛을 잡고 혼신의 노력을 멈추지 않는 사람, 새로운 도전을 감행하다 바닥으로 추락하지만 주저앉지 않고 역전의 감동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사람에게 우리는 박수를 보낸다. 그런 사람 중 하나가 바로 광고계의 전설 오길비가 아닐까. 언젠가는 높이 날기 위해 기회를 기다린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냥 기다리지 않았다. 기다리는 동안 더 높이 오래 날 수 있는 내공을 부단히 연마했다. 위대한 성취를 이룬 사람들의 공통점은 어느 날 갑자기 떴다가 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010000@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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