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로주의를 주창한 앨버트 프레드릭 머머리(Albert Frederick Mummery)는 “길이 끝나는 곳에서 비로소 등산은 시작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 말에서 비롯된 용어가 바로 `머머리즘(mummerism)`이다. 머머리즘은 보다 빠른 시간 안에 정상을 정복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등정주의가 아니라, 남들이 걸어가지 않은 미답(未踏)의 루트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의미와 가치를 찾는 등로주의를 가리킨다.
등정주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상에 오르기만 하면 된다는 등산 철학이자 전략이다. 반면에 등로주의는 남들이 걸어가지 않은 낯선 루트,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한계선을 그어놓고 포기한 어렵고 위험한 루트를 개척하는 과정에 의의를 두는 등반 철학이자 전략이다. 알피니즘의 역사는 속도와 결과를 중시하는 등정주의가 모험과 과정을 중시하는 등로주의로 변천한 과정이다. 등정주의는 정상에 가장 먼저 오른 사람을 영웅으로 대접하지만, 등로주의는 정상에 도달하는 여정에서 남다른 방법으로 불가능과 한계에 도전한 사람을 영웅으로 대접한다.
1년에 한 번 선정되는 최고 알피니스트상인 `황금 피켈상` 자격 요건을 보면 등정주의보다 등로주의에 높은 점수를 준다. 보통의 등반가들이 사용하는 산소, 셰르파, 고정 루프, 무전기를 쓰는 것은 감점 요인이다. 등로주의 주창자들은 그래서 히말라야 14좌 완등 따위엔 관심이 없다. 그들은 남과 비교하지 않고 전과 비교한다. 등로주의는 이제까지 알려진 루트에서 반복 사용하는 등반 도구와 방법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낯선 루트를 선택해 힘겨운 도전을 즐긴다.
낯선 등산 루트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등산 전략과 도구, 방법이 필요하다. 등로주의자가 선택하는 루트는 익숙한 길이 아니라 낯선 길이고, 편안한 길이 아니라 불편한 길이며, 확실한 직선 루트가 아니라 불확실한 미지의 곡선 루트다. 등로는 정상에 도달하는 루트가 한 가지만 존재하는 정답(正答)의 세계가 아니라 등정 과정과 상황에 따라서 여러 가지 루트가 존재할 수 있는 현답(賢答)의 세계다. 이단아적 변형과 변종을 즐기는 등로주의자는 정상에 도달하는 정답이 보여도 의도적으로 쉬운 루트를 포기하고 답이 보이지 않는 어려운 루트를 선택한다. 등로주의자는 분투와 노고 속에서 발견의 기쁨을 즐기고 모험과 도전 속에서 성취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010000@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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