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우리 산업은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에 따른 압축 성장을 이룩했다. 선진기업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시장을 만들면 재빨리 벤치마킹하고 더 좋은 서비스로 시장점유율을 높였다.
그러나 최근 삼성에 대한 애플의 소송, 현대차에 대한 프랑스 견제, 듀폰의 소송에 따른 코오롱의 천문학적 배상 판결 등 각국 견제가 부쩍 심해졌다. 패스트 팔로어 전략으로 더 이상 지속성장을 담보할 수 없다. 혁신으로 시장을 이끌고 선도자 역할을 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 전략을 추진할 시점이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퍼스트 무버 전략을 채택한 기술 선진국이 세계를 이끌었다. 1950년대까지 유럽이 기계 산업을 바탕으로 세계를 주도했고, 2000년대까지는 미국과 일본이 전자·정보기술(IT)산업을 중심으로 세계를 선도했다. 21세기 주도권은 나노기반 융합기술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 일본, 독일 등은 이미 나노기술의 중요성과 산업적 파급력을 인식하고 기술 개발에 예산과 인력을 집중하고 있다. 나노기술을 제조업 혁신의 열쇠로 보고 이로써 경쟁력 우위를 유지하겠다는 전략이다. 선진국뿐 아니라 러시아, 중국 등 후발국 추격도 거세다. 러시아는 2007년 국영 나노기술회사인 `러스나노(Rusnano)`를 설립해 2015년까지 10조원을 투자한다.
우리도 지난 10년간 2조원 넘는 예산을 투입해 나노 분야 기초원천기술을 확보하고 기업지원 인프라를 확충했다. 그 결과 한국은 미국, 일본, 독일에 이어 세계 4위 수준 나노기술 경쟁력을 확보했다. 물론 나노기술 분야 논문과 특허 규모도 세계적 수준이다.
그러나 기술·학문적 성과에 비해 산업·경제적 실적은 미흡하다. 지난해 파악된 국내 나노기업은 690여곳에 이르지만 이익을 내는 기업은 3분의 1에 불과하다. 원천기술 개발 성과가 사업화 궤도에 접어들지 못했음을 방증한다. 이제 그동안 기른 기초체력을 바탕으로 기존 산업과 융합해 산업 혁신을 이끌어내는 데 초점을 맞출 시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노기술 상용화를 본격 추진하기 위한 `나노융합2020사업단`이 공식 출범했다. 나노융합2020사업은 지식경제부와 교육과학기술부가 함께 만든 상용화 연구개발 프로그램이다. 지난 10년간 투자한 나노 분야 기초원천 연구성과를 상용화하기 위한 사업이다. 2020년까지 민간자본을 포함해 예산 총 5130억원을 투입한다. 상용화가 빠르고 산업 파급효과가 큰 나노기술(NT)-IT, NT-환경기술(ET) 등 2대 융합 분야를 집중 지원한다.
공동사업단 출범으로 연구단계별 경계, 부처 간 연계 미흡 등 연구개발(R&D) 과정의 비효율성도 해소될 전망이다. 기존 R&D와 달리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 및 전 주기 동시 지원으로 사업화 성공 가능성을 높이고 사업화 기간을 줄일 것으로 기대된다.
나노융합2020사업은 사업단 출범과 함께 출발선을 떠났다. 하지만 앞으로 사업단이 해야 할 일이 많다. 나노융합 상용화라는 취지에 맞게 과제 기획부터 정확한 선구안이 필요하다. 선발 과제는 수행기업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밀착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다. 시제품이 매출로 연결될 수 있도록 수요기업 연계는 물론이고 해외 판로 개척 등 마케팅도 동반해야 한다.
지난 10년이 나노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국가 간 경쟁이었다면 향후 10년은 산업화 경쟁이다. 스티브 잡스가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서 아이폰이 탄생했다고 역설한 것처럼 기존 산업과 나노기술의 교차점에서 무수한 혁신 결과물이 쏟아지길 기대한다.
김재홍 지식경제부 성장동력실장 jkim1573@mke.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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