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 등정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단지 남보다 빨리 오르는 데만 전력투구하는 등정주의(登頂主義)와 남다른 방법으로 올라가는 과정에 의미를 두는 등로주의(登路主義)다. 정상에 올라가는 목적은 같지만 올라가는 여정과 방법은 다르다.
모든 분야의 발전에는 상식을 거부하고 남다른 대안을 제공하는 선구자가 있게 마련이다. 등산사에도 그런 사람이 있는데 바로 앨버트 프레드릭 머머리(Albert Frederick Mummery)라는 영국의 등반가다. 19세기 말에 주로 활동한 머머리는 당시 일반적인 등반 방식인 정해진 능선을 따라서 산을 오르는 등정주의와 달리 알려지지 않은 벽을 타고 산에 오르는 등로주의를 창시했다. 1880년대에 머머리는 등산계에서 이단자(異端者) 취급을 받았지만 고산 등반가(알파니스트)들에게는 새로운 등산철학을 알려준 시조였다. 등정주의로 일관한 알파니스트들은 정복해야 할 미답봉(未踏峯)이 없어지면서 남다른 방법으로 산에 오르는 과정을 중시하게 됐다. 알파니스트들의 눈은 `정상 정복`이 아니라 `낯선 등로 개척`으로 옮겨갔다. 이제까지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길, 다른 등반가가 어렵고 위험하다고 포기한 불확실한 길을 새롭게 개척하려는 시도가 등로주의를 낳게 한 원동력이었다.
최단 기간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이나 산악 그랜드슬램(히말라야 14좌, 세계 7대륙 최고봉, 3극점) 달성은 등정주의를 대변하는 말이다. 등정주의를 신봉하는 알파니스트들에 의해 `내로라`하는 세계 최고 고봉(高峯)들이 정복되었고 세월이 지남에 따라 오를 만한 미등봉(未登峯)은 얼마 남지 않게 되었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단순히 정상까지 올라가기만 하는 것은 의미도 재미도 없게 됐다. 뭔가 색다른 도전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등로주의를 만들어냈다.
등로주의를 신봉하는 산악인은 다른 사람보다 빨리 오르기보다 다른 사람과 다른 방법으로 산을 오르는 데 재미를 느낀다. 등로주의자의 비교 대상은 바로 자신이다. 그들은 어제보다 나은 방법으로 남과 다르게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는 데 의미를 부여한다. 등로주의는 이제까지 없었던 새로운 등반 지도를 만드는 일에 온 힘을 쏟는다.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010000@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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