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훈의 디지털 확대경]중견기업 제대로 키워보자

2002년 이후 독일은 7년간 세계 수출 1위국 지위를 고수했다. 비결을 독일의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은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의 활약에 있다고 단정한다. 당시 2000여 세계 히든 챔피언 가운데 절반 이상이 독일에 포진해 있으니 당연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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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하는 히든 챔피언은 세계 시장 점유율 3위권 안에 든 기업, 매출액 4억유로 이하인 기업,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기업이다. 2005년 기준 세계 히든 챔피언의 평균 매출액은 4800억원, 평균 직원 수는 2037명. 그들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10~12%로 글로벌 500대 기업의 두 배 수준이다.

그의 저서 `히든 챔피언`은 2008년 한국에서도 출간돼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됐다. 민간 경제연구소가 CEO가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선정했는가 하면 정책입안자의 필독서로 부상하면서 자연스레 정부 관심도 히든 챔피언 육성에 쏠렸다. 이듬해 초 한국수출입은행은 한국형 히든 챔피언 육성 방안까지 내놨다. 기업 분류 기준도 바뀌었다. 정부는 2011년 3월 산업발전법을 개정해 중소기업과 대기업뿐이던 종전 기업 분류기준에 중견기업 기준을 추가했다. 사실상 히든 챔피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격랑이 일면서 지난해 독일은 중국, 미국에 이어 세계 수출 3위국으로 밀렸지만 여전히 후위권 국가에 비해 월등한 수출 규모를 자랑한다. 7위에 랭크된 우리나라의 수출액 4660억달러, 수출비중 3.1%보다 2.8배가량이나 많다. 히든 챔피언 덕택이다.

엄밀히 따지면 독일의 히든 챔피언은 우리나라 최상위 중소기업(강소기업)과 중견기업을 아우르는 기업군이다. 기업 규모나 업력을 고려하고, 수출입은행이 제시한 한국형 히든 챔피언 기준(수출 1억달러 이상이면서 지속적인 세계 시장 지배력을 갖춘 글로벌 강소기업)을 감안하면 중견기업군에 가깝다.

중견기업을 육성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2010년 기준으로 국내 기업의 99.9%를 차지하는 312만개 중소기업 수에 비하면 중견기업 수는 0.04%인 1291개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중견기업은 80만개의 일자리를 재공한다. 이런 중견기업을 2015년까지 3000개로 늘리면 수출 증대 효과는 차치하고라도 40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더 생긴다는 게 정부의 분석이다.

세계 시장을 주름잡는 중견기업이 늘어나면 경제 활력은 폭발적으로 증대된다. 통계가 증명한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 중견기업 수가 적은 이유는 바로 첩첩이 쌓인 규제에 있다.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올라서는 순간 법인세나 특별세액 감액 등 160여개의 지원이 사라진다. 성장에 부담을 느껴 중소기업군에 잔류하고 싶은 이른바 `피터팬 증후군`을 조장한다. 이들이 겪는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해주지 못하면 중견기업 육성은 공염불이다.

지식경제부가 물꼬를 텄다. 중견기업국 신설과 함께 세제혜택 방안도 제시했다. 혜택이 인색하다는 중견기업의 평가도 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 늦긴 했어도 정부가 중견기업 육성에 나선 것, 또 지원정책을 가시화한 것은 손뼉 칠 일이다. 남은 건 중견기업의 상대적 박탈감을 보전할 실질적 후속조치를 서둘러 내놓는 일이다.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 중소기업청, 코트라, 수출입은행 등 유관 부처·기관이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야 한다.

대선을 앞두고 여야가 재벌개혁, 경제민주화에 이구동성이다. 뒤집어 보면 강소·중견기업을 키우자는 소리다. 대기업의 시련이 불가피해 보인다. 그렇다면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성장을 이뤄낼 대안은 뭘까.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중견기업 육성이 유일한 해답이다. 국가의 미래가 달린 일이니 제대로 키워보자.


최정훈 성장산업총괄 부국장 jhchoi@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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