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말 지식재산센터에선 이명박 대통령·김황식 국무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지식재산 강국 원년 선포식`이 열렸다. 정부는 당시 △지식재산(IP) 침해 대응력 확보 △IP 손해배상 실효성 확보 △IP 존중문화 조성과 인력 양성 등 12가지 `2012년 국가지식재산 시행계획`을 확정 발표했다. 반년이 지난 지금 업계 반응은 `무덤덤` 자체다. “내심 변화를 기대했지만 기대 이하였다”는 설명이다. 국가 수장이 참석해 `혹시나` 했던 기대가 `역시나`로 무너지는 모습이다. 최근엔 `지식재산 강국`이란 말도 사라졌다. 산업계의 공통된 목소리는 정부 특허 마인드(인식)부터 바꾸라는 설명이다. 전자신문은 2회에 걸쳐 지식재산 강국 도약을 위한 과제와 대안을 점검한다.
(상)기업 의지 꺾는 `官`
“재수 없으면 패소하는 게 이쪽 현실입니다.” 황당한 특허법원 판결을 경험했다는 모 변리사 말이다. 특허에 대한 이해 부족이 엉뚱한 결과(판결)로 나온다는 지적이다.
설령 승소해도 `괜히 소송했다`며 쓴웃음만 짓는다. 손해배상액이 턱없이 적기 때문이다. 특허법 128조에 명시된 손해배상액 계산법을 보면, 특허침해 피해자의 상품판매 이익과 수량에만 한정한다. 드러난 피해만 본다. 특허 개발 과정에서의 연구개발(R&D)비와 인건비 등 잠재 피해를 철저히 무시한다.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특허소송당 평균 손해배상액은 5000만원 수준. 20억원에 달하는 미국의 10분의 1도 안 된다. 전문가는 “손해배상액은 곧 특허가치”라며 “손해배상액이 낮다는 것은 특허가치를 낮게 본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허 경시 풍토의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업계는 `비전문성`을 꼽는다.
특허법원 판사 재직기간이 길어야 3년을 넘지 못한다. 특허를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턱없이 짧다. 업계 한 관계자는 “특허법원에 갓 배치된 판사가 의사봉을 두드리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전했다. 우리나라 특허권자 소송 승소율은 26%. 미국은 59%에 달한다. 여파는 그대로 산업에 미친다. 속된말로 `걸리면(소송에서 패하면) 토하면 그만`이란 식이다. 전형적인 후진 구조다.
이렇다 보니 무엇보다 정부 특허 업무에서 중요한 선행기술 조사사업 관련한 단가(건당 30만원) 산정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진다. 선행기술조사는 특허 등록에 앞서 국내외 동일한 특허가 출원돼 있는지 확인하는 심사 절차다. 민간에서 조사 요청시 건당 65만원 안팎에 시장 가격이 형성된다. 반값에 발주하고 있는 셈이다. 가격도 수년째 요지부동이다. 손익 맞추기가 힘들 수밖에 없다.
산업계에서는 “경력이 많거나 기술 전문가를 투입하고 싶지만 단가를 맞출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일부에서는 나아가 부실조사를 우려한다. 지식재산서비스업체 대표는 “선행조사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채 출원비용과 전체 확보 예산에서 적당하게 가격을 잡는 것 같다”고 평했다.
출범한지 1년 된 지식재산위원회에 대한 불만도 나온다. 실행기관은 아니지만 역할을 체감하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모든 부처를 모아 놓고, 가끔 회의를 하는 것으로 안다”며 “위원회에서 논의한 내용이 정책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 모르겠다”고 의문을 제시했다. 지재위 인원은 파견 형태라 핵심 인원의 교체 시기도 빠르다.
`관`을 보는 이 같은 잠재 불신은 정부 정책 불신으로 이어진다. 한 예로 지난주 특허청이 내놓은 한국영문특허초록(KPA) 오역 대책에 업계는 `외부 공인인증 영어능력시험 응시 의무화` 등을 언급하며 “여전히 특허번역을 전문 분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KPA 오역 문제에 대한 특허청 대책과 산업계의 평가
자료:특허청
김준배·권동준기자 j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