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책임을 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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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명가(名家), 표준 명관(名官)`이라는 책자가 있다.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장직을 마치고 퇴임할 즈음 직원들이 정성껏 만들어 전하는 연설문집이다. 프로필과 함께 30여년간 공직생활을 하면서 남긴 대표적인 업무와 기표원장직을 수행하면서 참석한 행사 연설문, 기고문을 사진과 함께 정리한 책자다. 가보까지는 아니더라도 인생을 살면서 하나쯤 간직하고 싶은 중요한 가치로 남는 선물일 것이다.

남인석 한국중부발전 사장도 2010년 1월 기표원장직에서 물러날 때 같은 책자를 받았다. 그는 2년 가까이 기표원장으로 재직하면서 표준 정책 기관의 위상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 떠나는 날 후배 공무원에게 열린 마음과 협력적인 자세,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자세, 투철한 국가관과 청렴함을 강조했다.

중부발전 사장에 취임해서는 `전문성(Professional)·자부심(Pride)·이익(Profit)`을 뜻하는 `3P 경영`에 매진했다. 발전원가가 높은 중부발전의 체질적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기존 발전소 컨셉트를 바꾸는가 하면 노후설비 수명 연장과 성능 개선 공사에 주력했다. 공기업 특유의 수동적 문화를 바꾸려는 노력도 멈추지 않았다.

상명하달의 획일적 문화와 딱딱한 분위기가 누그러질 즈음 사고가 발생했다. 중부발전의 주력 발전소인 보령화력본부에서 화재와 추락사고가 잇따라 일어난 것이다. 지난해 발생한 9·15 순환정전과 겨울철 비상수급기간 여파가 남아있는데다 겨우내 크고 작은 원자력발전소 사고와 납품비리 등이 겹쳐 상황이 심각했다.

남 사장은 즉시 모든 책임을 지기로 하고 사의를 표명했다. 하지만 그걸로 끝내지 않았다. 즉각 성능복구단을 꾸려 가동했다. 100일 이내에 복구를 완료하겠다는 목표로 움직였다. 당시 정부나 발전 전문가들은 100일 이내 복구는 어림도 없다는 반응이었다. 화재로 녹아내린 전선만 138만m에 달했다. 암담했다. 그러나 남 사장은 매주 보령화력으로 출근해서 직원들을 격려하며 함께 땀방울을 흘렸다. 직원 50여명과 16개 협력사 직원의 하나된 노력에 힘입어 지난달 20일 1호기가 정상 가동했고 2호기도 복구를 완료했다. 전문가들조차 고개를 흔들던 `100일 신화`를 90여일 만에 이뤄냈다.

중부발전은 11일 열린 공공기관운영위원회 결과를 토대로 13일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새 사장을 선임한다. 새 사장이 선임되면 남 사장은 13일 이임식을 끝으로 중부발전을 떠난다. 사장으로 있던 2년 6개월 중 바쁘게 보내지 않은 날이 없었지만 지난 6개월은 전쟁하는 마음으로 지냈을 그다. 100일 신화를 달성한 남 사장은 이제 가벼운 마음으로 중부발전을 떠난다. 책임을 진다는 것.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는 해냈다. 그는 이제 더 큰 바다로 나갈 것이다.


주문정 논설위원 mjjo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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