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이 흔들리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 가구 가운데 중산층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 75.4%에서 2010년 67.7%로 줄었다. 빈곤층(저소득층)은 같은 기간 7.1%에서 12.5%로 늘었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마이크로데이터 20년 치를 한국경제연구원이 분석한 결과다. 20년간 1인당 GDP가 3배 이상 증가했지만 삶의 질은 더 악화된 셈이다.
중산층이 엷어졌음은 물론이고 중산층의 적자가구 비중도 이 사이 15.8%에서 23.3%로 늘었다. 당연히 중산층의 가구 흑자율도 줄어들었다. 저소득층과 격차는 좁아졌고 고소득층과 더 벌어졌다. 중산층 가구지출 가운데 부채상환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2.5배 이상이나 늘었다. 국민연금, 건강보험 등 준조세 지출 비중과 사교육비 지출 비중 역시 3배 이상 많아졌다. 소득은 늘었어도 빠져나가는 돈(경직성 비용)이 많아졌으니 소비여력이 감퇴할 수밖에 없다.
최근 나온 가계부채 통계 내용은 훨씬 심각하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을 크게 웃돈다. 2010년 기준 OECD 평균 73%보다 높은 81%다. 심각한 경제위기 상황에 봉착한 스페인의 85%에 근접했다. 61%인 그리스보다도 20%포인트나 높다. 이 와중에도 우리나라가 버틸 수 있는 것은 그나마 경제성장률이 플러스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산층의 소비여력 감소는 경제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사회불안을 증폭시키는 요인이 된다. 결코 안도할 수도 없고 안도해서도 안 되는 상황에 우리는 직면했다.
가계부채의 질도 나빠지고 있다. 가계대출 연체율은 지난 4월말 기준 0.89%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2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가계부채 최대 피해자는 중산층이다. 중산층은 사회 안정의 근간이자 경제를 지탱하는 기둥이다. 이 중산층이 무너지면 우리도 치명적인 위기를 면하기 어렵다.
그래서 항상 대선주자들은 중산층의 부흥을 들먹인다. 엊그제 대선 출마를 선언한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도 출사표에 중산층 내용을 담았다. 대통령이 돼서도 빠뜨려선 안 될 중요한 정책구호다. 현 정부도 경제정책 구호로 `서민을 따뜻하게 중산층을 두텁게`를 내걸었다. 3년 전 문화체육관광부는 이 문구로 이벤트까지 했다. 그만큼 중산층은 중요하다. 하지만 중산층 형편은 나아지기보다는 오히려 팍팍해졌다니 아이러니다.
세계 최고 경제성장률을 자랑하는 중국의 관심도 온통 중산층에 쏠려 있다. 중국은 경제정책 기조를 결정하는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중산층 육성을 올해 핵심 키워드로 삼았다. 8%대에 달하는 경제성장으로 부자 국가 범주에 한 걸음 더 나아간 중국이다. 하지만 부자 국민이 없는 부자 국가는 사상누각이라는 사실에 중국은 주목한다. 중국은 2009년에 썼던 가전하향 카드를 올해 다시 꺼내들었다. 가전하향은 농촌지역에서 가전제품을 사면 정부가 보조금을 주는 제도다. 중국 정부는 소비부양 특단조치로 가전제품과 자동차를 사라며 우리 돈으로 7조원을 쏟아 부었다.
이에 비하면 우리는 지나칠 정도로 느긋하다. 경제위기 이후 늘어난 재정부담을 메워 낼 주체는 중산층인 근로소득자이고 그들의 유리알 지갑이다. 어제나 오늘이나 바뀐 게 없다.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중산층을 키워야 한다는 것을 정부가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양질의 일자리 창출, 실질소득 증가, 경직성 세부담 경감, 소비진작을 이룰 정부의 부양책은 여전히 아쉬운 수준이다. 방관은 금물이다. 중산층 몰락 이후 내리는 처방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시기를 놓치면 백약이 무효다. 더 늦기 전에 중산층의 기반을 튼실히 할 확실한 조치가 필요하다.
최정훈 성장산업총괄 부국장 jh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