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한국에서 글로벌 반도체 장비업체가 탄생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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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인텔, IBM, 삼성전자, 글로벌파운드리, TSMC 5개 반도체 제조업체가 미국 뉴욕주와 함께 450㎜ 웨이퍼 전환 연구개발(R&D)을 위해 향후 5년간 44억달러(약 5조1700억원)를 공동 투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G450C(Global 450 Consortium)`이라고 명명된 이 컨소시엄 프로젝트는 반도체를 제조할 때 사용하는 실리콘 웨이퍼의 크기를 현재의 직경 300㎜보다 1.5배 긴 450㎜로 늘려 반도체 개수를 배 이상 늘리려는 것이다. 웨이퍼 크기가 커지면 반도체 생산 효율이 커진다. 이는 반도체 제조업체의 생산원가와 직결된다. 450㎜ 공정이 정착되면 제조 비용을 30%가량 줄이는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

반도체 시장은 지난 30년간 지속적인 성능 향상과 생산원가 절감으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며 성장·발전을 일궜다. 반도체는 초창기 PC나 서버에 국한된 용도에서 지금은 스마트폰, 스마트패드(태블릿PC) 같은 모바일 기기를 넘어 스마트TV, 내비게이션 등 전 산업에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반도체의 눈부신 발전은 반도체 소자 미세화에 따른 성능 향상과 10년 주기의 웨이퍼 규격 확대로 생산 비용 구조의 효율성을 높이는 연구를 병행한 덕분이다. 반도체 생산 공정은 1981년 150㎜를 거쳐 1991년 200㎜ 제조 라인이 도입됐다. 2001년에는 300㎜ 웨이퍼로 규격이 전환돼 생산성이 높아졌다.

이런 경험으로 반도체산업은 웨이퍼 규격 확대가 한 회사만 단독으로 투자·추진하는 것보다 다수 소자, 장비, 재료 업체가 긴밀히 협력하고 표준화해야 투자비를 최소화해 성공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현재 반도체 공정에서 사용하는 300㎜ 웨이퍼 규격은 세계 각국 반도체 제조 기업이 긴밀히 협력해 단일화한 것이다.

올해 말 450㎜ 웨이퍼 파일럿 라인을 건설하려던 계획은 지체될 것으로 예상된다. 개발 비용 분담 문제 탓이다. 기술 격차를 유지하려고 빠른 450㎜ 전환을 요구하는 선발 소자업체와 달리 다수의 소자업체는 새로운 팹 건설 수요가 많지 않고 450㎜ 전환에 쓸 투자 여력이 충분하지 않다. 장비업체는 300㎜ 전환보다 수요 업체 수가 줄어 시장성이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450㎜ 전환에 소극적이다. 이런 교착 상황에서 뉴욕주가 알바니에 G450C를 구성하고 R&D에 필요한 비용을 분담하기로 결정한 것은 450㎜ 전환에 새 전기가 될 것이다. 이제 남은 이슈는 전체 450㎜ 공정 라인을 위한 장비 개발에 세계적 장비업체가 언제 참여할지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만큼 성장한 70조원 규모의 세계 반도체 장비시장은 앞으로 우리나라가 눈여겨봐야 할 신성장동력 시장이다. 특히 차세대 반도체 450㎜ 웨이퍼 개발 등 반도체 장비시장에서 우리 기업이 주도권을 확보하려면 민관의 협력과 노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국내 반도체장비 산업의 선진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문제는 영세한 규모에 따른 R&D 능력 미흡이다. 세계 4위와 10위 업체인 램리서치와 노벨러스가 합병하는 등 세계는 일관 공정 라인업을 갖추고 R&D 능력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단품 위주며 국내 소자업체와의 수직적 거래가 대부분인 국내 반도체장비 산업에서 세계적 장비업체와 경쟁은 힘겹고 향후 450㎜ 전환을 위한 R&D도 어렵다.

이 상황을 타개하려면 먼저 국내 장비업체가 독자적 R&D와 영업을 할 수 있도록 규모를 키워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업계의 자율적인 협업과 자본금 증대 등으로 연구능력을 향상시키고, 장기적으로는 업체 간 인수합병(M&A)으로 대형화도 고려해야 한다. 또 차세대 450㎜ 전환 컨소시엄에 전략적으로 참여해 세계 유수 소자업체에 국내 장비업체의 역량을 보여주고 세계화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선택과 집중으로 가능성 있는 장비와 업체를 찾아내고 450㎜ 전환 컨소시엄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 지원을 고려할 때다.

최리노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반도체공정·장비부문 PD Rino.choi@in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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