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공정거래위원회, 업계)
삼성, 현대차, SK, LG 등 국내 4대 그룹이 모두 반도체 시장에 진입하면서 업계에 회오리가 분다. 4대 그룹이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도미노식 인력 이동이 시작됐다. 소프트웨어(SW) 플랫폼 및 회로 설계를 중심으로 팹리스 인력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반도체 인력 선순환을 위한 전략적인 인재 양성이 핵심 과제로 부상했다.
1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현대차그룹 반도체 계열사 현대오트론이 공식 출범하면서 반도체 업계에 도미노식 인력 이동 조짐이 포착됐다. 현대오트론은 출범과 함께 연내 반도체 개발 인력을 지금의 두 배 수준인 400여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고급 반도체 인력이 선호하는 연봉과 근무 조건을 제시해 반도체 인력 시장을 흔들고 있다. 실제로 취업포털 잡코리아에 따르면 반도체 관련 채용 공고는 지난해 3월 1569건에서 올 3월 1878건으로 20%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한 팹리스 업체 관계자는 “삼성, LG에 이어 현대차그룹까지 반도체 설계에 직접 뛰어들면서 인력 이동이 이전보다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며 “대기업들이 경력사원 위주로 채용하면서 국내 중소 팹리스 업체들의 연구개발 경쟁력이 뒤처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등 비메모리 사업을 강화하는 삼성전자도 관련 인력을 수시로 뽑는다. 삼성전자는 주로 해외 박사급 핵심 인력 채용에 집중한다. 미국 오스틴법인은 시스템 반도체 개발 인력만 5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는 올해 투자의 절반 이상을 시스템 반도체에 집중하면서 개발 역량을 강화했다. 시스템 반도체 경쟁력이 사실상 연구개발 단계에 결정된다는 점에서 고급 인력 수혈이 지상 과제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전력 반도체 사업에 집중해 관련 유망 팹리스 인력들이 일부 이동한 것으로 안다”며 “삼성, 현대 등 대기업들의 경력 채용에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재계 3위인 SK도 하이닉스반도체를 인수하면서 시스템 반도체 사업과 시너지를 노린다. SK는 오는 2015년까지 파운드리(수탁생산)를 포함한 시스템 반도체 매출을 1조원까지 끌어올린 뒤 반도체 산업 전 분야를 아우르는 종합반도체회사(IDM)로 도약한다는 목표다.
LG그룹도 LG전자 SIC연구소를 중심으로 반도체 개발 인력을 대거 보강한다. 지난해 300여명 수준인 연구원 규모도 올 초 500여명 수준까지 확대했다. 이 회사는 내년 초 생산을 목표로 모바일 쿼드코어 AP를 자체 개발한다. LG전자는 반도체 설계 경쟁력을 바탕으로 세트 성능 차별화 및 가격 경쟁력 향상에 사활을 걸었다. 이와 관련, LG그룹은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에 휴대폰과 디스플레이 원천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R&D센터까지 열며 다각적인 행보를 강화했다. 경종민 KAIST 교수(전기 및 전자공학과)는 “대기업의 무차별적인 인력 빼가기는 팹리스를 비롯한 반도체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저해할 우려도 있다”며 “산업적 중요성에 걸맞게 반도체 인력 풀을 확대할 국가적인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정미나기자 mina@etnews.com, 양종석기자 jsy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