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과학기술, 말보다 행동이 필요한 때

한동안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킨 총선이 지난주 마무리됐다. 선거 결과를 보면 새누리당이 제1당을 차지하며 완승을 거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총 득표 수로 민주통합당이 12만표 정도 더 얻었기 때문이다. 선거기간 내내 외쳐댄 이른바 `국가 미래론`이 `정권 심판론`을 완전히 압도했다고 보기 어렵다. 총선이 끝나자마자 예상했던 대로 국민과 정치계 관심은 연말 대선으로 향했다. 벌써부터 대선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들이 언급된다. 경제발전이나 복지증진 등이 중요한 변수로 언급된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대선 후보들이 어떤 정책으로 진실성 있게 국가 경제 발전 또는 복지 증진을 이뤄내는지다. 단순한 선심성 구호나 선언으로 표를 얻어 당선을 노리겠다는 생각은 버릴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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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국가경제 성장의 지나간 수십년을 돌이켜보면 정보통신기술(ICT)을 비롯한 과학기술의 공헌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중에서도 1980년대에 초고속정보통신망 인프라를 구축함으로써 오늘날 세계 최고 수준의 발전을 이뤄낸 ICT 분야의 놀라운 성장은 그동안 국가적 차원의 IMF 경제위기와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ICT는 지금도 한국의 수출을 이끌어 가는 중요한 분야다. 이러한 놀라운 발전은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수십조원대의 막대한 투자를 위한 적시 정책 결정과 강력한 추진에서 기인한다. 어떻게 보면 초기 정책 성공에 따라 그 이후 발전은 자연스럽게 진척됐다고 볼 수도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 과학기술 정책은 과연 어떠한가. 과연 새롭게 국가의 미래 발전을 이끌어줄 적시 정책 결정과 국가 차원의 적절한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가. 불행히도 이의 답변은 그렇게 긍정적이지 못하다. ICT를 비롯한 첨단 과학기술의 언급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진실로 국가 미래를 견인할 만한 핵심 과학기술 인프라에 대한 적시 정책 결정과 적절한 투자 사례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물밑에서 논의되는 공약을 훑어보아도 아직 이렇다 할 구체적 실체가 보이지 않는다. 단지 ICT를 비롯한 첨단 과학기술에 더 많은 투자를 하겠다느니 과학기술 관련 정부조직을 재검토하겠다느니 하는 정도의 구호나 선언적 언급이 있을 뿐이다. 4·11총선에서 과학기술계 전문가들이 5%를 넘는 의석을 차지한 것이 막연하나마 국민으로 하여금 새로운 기대감을 갖게 한다.

ICT를 비롯한 첨단 과학기술 분야는 막연한 선언이나 슬로건만으로는 별다른 효과를 얻을 수 없다. 대선을 앞두고 진정으로 과학기술을 위한 공약을 하려거든 최소한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언급한 `정보고속도로(Information Highway)` 구상이나 현 정부의 `한반도 대운하` 구상보다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만 유권자인 국민의 지지를 얻고 나아가 미래 국가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최근 국내외적으로 신자유주의의 허점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국가적 거버넌스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ICT를 비롯한 첨단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네트워크 인프라나 사이버국가 건설을 위한 광범위한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은 미래 사회간접자본에 해당된다. 국가가 직접 관심을 가지고 챙길 사항이다. 오늘날 새로운 사회간접자본으로 부상한 첨단 과학기술 인프라는 지금까지 논의돼 온 도로나 항만·운하와 같은 전통적 인프라를 훨씬 뛰어넘는 폭발력이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 경제 발전을 견인할 과학기술, 이젠 말보다 행동이 필요한 때다.

박기식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전문위원 kipark@etr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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