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 <77>

 SW의 날 제정

 

 12월 4일. 소프트웨어의 날이다.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가 ICT 단체 중 가장 먼저 제정한 기념일이다.

 왜 12월 4일인가. 당시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김택호 회장(현대정보기술 사장 역임, 현 프리씨이오 회장)의 증언.

 “정부가 1987년 12월 4일 소프트웨어개발촉진법을 제정했습니다. 소프트웨어산업의 중요성을 국민에게 인식시키고 업계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법 제정일을 소프트웨어의 날로 제정한 것입니다.”

 1996년 12월 4일.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는 서울 강남 라마다르네상스호텔에서 제1회 소프트웨어의 날 선포식을 가졌다. 선포식에는 김택호 회장을 비롯해 김상영 전자신문 사장(회장 역임), 이천표 통신개발연구원장(현 서울대 명예교수), 정홍식 정통부 정보통신정책실장(정통부 차관, 현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 이사장), 김영태 한국소프트산업협회 고문(현 프리씨이오 명예회장) 등 3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강봉균 정통부 장관(재경경제부 장관 역임, 현 민주당 국회의원)은 정홍식 실장이 대신 읽은 격려사를 통해 “소프트웨어산업은 지식집약적 두뇌산업이며 고부가가치 무공해 산업으로 사회 각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전략산업”이라며 “앞으로 소프트웨어산업의 체계적 발전을 위한 생산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세제. 금융상의 지원을 확대하고 법과 제도를 개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정통부와 협회는 선포식에 이어 오후 5시 서울 서초동 일광빌딩에서 한국소프트웨어지원센터 개소식도 가졌다. 정부가 전액 출자한 지원센터에는 우림정보통신과 현대소프트, 대현시스템 등 캐드와 인터넷 웹서비스, 공장 자동화, 게임 등에서 기술력을 인정받는 21개 벤처업체가 입주했다.

 한국소프트웨어지원센터 이사장에는 김택호 회장이, 소장에는 유병배 협회 사무국장(현 중소기업진흥공단 인증원 선임심사위원)이 선임됐다.

 정부는 이틀 후인 12월 6일 2차 국가경쟁력강화추진위원회 회의에서 소프트웨어산업 육성의지를 거듭 천명했다. 정부는 △소프트웨어 인력을 올해의 5만2000명에서 5년 후에는 12만명으로 늘리고 △정부 및 공공기관에 대해 내년도 하드웨어 구입비 10%(17억원)를 소프트웨어 구입비로 사용토록 의무화하며 △1997년 중 정부와 민간 참여기업이 각각 50억원씩 공동출자해 영세 소프트웨어업체의 보증사업을 위한 소프트웨어 공제사업을 도입키로 했다.

 정통부는 소프트웨어지원센터도 서울에 이어 부산과 대구, 광주, 대전 등 4대 도시로 확대 설치키로 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그해 10월 14일 청와대에서 열린 정보화전략발표회의를 주재하면서 소프트웨어와 영상산업을 적극 육성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밝혔다.

 당시 김 대통령의 이런 의지표명은 정보통신부나 소프트업계에 복음(福音)이었다. 정통부는 이런 분위기를 바탕으로 그해 10월 29일 소프트웨어산업을 2001년까지 국가전략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방안을 발표했다.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는 1988년 4월 7일 서울 전경련회관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과학기술처산하 단체로 출범했다. 초대 회장에는 박병철 쌍용컴퓨터 사장(작고)이 선임됐다. 당시 65개 소프트웨어업체들이 회원으로 가입했다.

 박 회장에 이어 송병남(기아자동차 사장 역임, 현 프리씨이오 이사), 김영태, 김택호, 김광호(포스데이타 사장 역임) 김선배(현 호서대교수), 정병철(현 전경련 부회장), 최헌규(현 다우그룹 부회장), 유병창(현 헤럴드미디어 대표), 박한용(현 포스코 부사장)을 거쳐, 현재는 오경수 회장(롯데정보통신 사장)이 협회를 이끌고 있다.

 과기처는 1987년 12월 4일 소프트웨어산업발전을 위한 소프트웨어개발촉진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2000년 1월 21일 내용을 개정하면서 명칭도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으로 바꾸었다. 과기처 소관인 소프트웨어산업이 정보통신부로 넘어온 것은 1994년 12월 24일 정부조직 개편에 따른 것이다.

 당시 정통부는 과학기술처로부터 시스템과 정보통신기술개발업무와 컴퓨터프로그램 기술개발업무 등을 이관 받았다. 소프트웨어산업 주무과인 과학기술처 정보산업기술과 이재홍 과장(전남체신청장 역임, 현 한국LP가스공업협회 부회장)과 직원 11명도 1995년 1월 정보통신부로 넘어왔다.

 이재홍 과장의 회고.

 “당시 정홍식 실장에게 1년간 과기처에서 넘어온 인력이 소프트웨어업무를 담당하게 해달라고 건의했어요. 저는 정보통신진흥과장으로 일했습니다.”

 이에 따라 산업협회도 1995년 1월 9일 과학기술처에서 정보통신부 산하로 이관됐다. 업무 이관은 이미 예고된 일이었다.

 1992년 7월 15일 서울 전경련 20층. 김영삼 민자당 예비대선후보는 아침 7시 30분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와 정보처리산업협회, 한국데이타베이스산업협회가 공동주최한 조찬간담회에 참석해 정보산업육성 구상을 밝혔다.

 김 후보는 이 자리에서 “정보산업이 국가경쟁력 강화의 원동력”이라며 “대통령에 당선되면 청와대에 정보산업을 전담하는 수석비서관을 두고 정보산업육성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강조했다. 조찬간담회에는 200여명 정보업체 대표자가 참석했고 이들은 협회를 통해 정보산업육성을 위한 업계 건의문을 전달했다.

 조찬 간담회를 준비했던 당시 유병배 협회 사무국장의 말.

 “당시 김영삼 후보의 정책구상에 대해 기업의 반응은 아주 좋았습니다. 그 후 김대중 민주당 대선 후보 측 비서실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해 11월 9일에는 김대중 후보께서 서울 용산전자상가를 방문하고 싶다고 해서 제가 현황을 브리핑한 적이 있습니다.”

 김영삼 민자당 대선후보는 1992년 11월 정보통신 분야 6대 공약을 발표했다. 김 후보는 이 공약에서 소프트웨어 등 정보처리 관련 사업을 제조업 차원에서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후 후보시절 공약한 정보통신 분야에 대해 약속을 지켰다. 정통부를 출범해 정보통신 업무를 일원화했고 청와대에 1급인 정보통신비서관을 신설했다.

 이런 청신호 속에서 소프트웨어의 날 제정 아이디어를 낸 것은 이광호 협회 부회장(협회 상임고문, 에드라닷컴 회장 역임)이었다. 상공부 출신으로 아이디어가 풍부하고 업무 추진력이 강했던 그는 1996년 11월 초 이런 구상을 실천에 옮겼다.

 이광호 부회장의 증언.

 “아이디어가 떠올라 실무자에게 소프트웨어의 날 제정을 기안하도록 지시했어요. 1시간여 만에 결재를 하고 곧장 정통부에 전화로 내용을 이야기 하고 공문을 보냈습니다. 정통부도 ‘좋은 아이디어’라고 반색을 하더군요. 기념식에서는 유공자 포상도 하도록 했습니다. 이 때문에 제가 총무처로 뛰어다녔지요. 소프트웨어지원센터 설립 준비작업도 다 했습니다. 일본에 출장가보니 유사한 조직이 있어 설립을 건의했습니다.”

 당시 소프트웨어 업무를 담당한 정통부 김호 정보통신진흥과장(충청체신청장 역임, 현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부회장)의 기억.

 “그 당시 정통부는 산업협회와 이단형 박사(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장 역임, 현 KAIST 교수, 한국소프트웨어기술진흥협회장) 등과 각종 소프트웨어 육성책을 마련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협회가 소프트웨어의 날을 제정하겠다는 공문을 보내왔어요.”

 경제기획원 출신인 그는 소프트웨어 산업 관련 예산이 필요하면 과거 예산실 근무 인연을 바탕으로 예산을 확보했다. 그는 3년여 진흥과장으로 일하면서 협회 등과 함께 소프트웨어분쟁조정위원회 설치와 소프트웨어공제조합설립, 지역소프트웨어지원센터와 미국 실리콘밸리 해외소프트웨어 지원센터 개소 등의 실적을 남겼다.

 이런 조직은 세월에 따라 변했다.

 한국소프트웨어진흥센터는 1998년 9월 소프트웨어진흥법에 따라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으로 새롭게 출범했다. 초대 원장에 박영일 씨(정통부 전파방송관리국장 역임, 현 코레스텔 회장) 2대 이단형 씨, 3대 고현진 씨(현 LG유플러스 부사장) 4대 유영민 씨(포스코경영연구소 사장) 등이 취임했다. 그 후 이명박 정부 출범 후 2009년 5월 정보통신산업진흥법이 공표되고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과 정보통신연구진흥원, 한국전자거래진흥원 등이 한국정보통신진흥원으로 통합됐다. 초대 원장에는 정경원 씨(우정사업본부장 역임)가 취임, 재임 중이다.

 진흥원은 올해 처음으로 11월 21부터 25일까지를 ‘소프트웨어주간’으로 지정해 콘퍼런스, 공모전 등 다양한 행사를 개최했다. 11월 21일에 제12회 소프트웨어산업인의 날 기념식을 열고 유공자 포상과 우수제품을 시상했다.

 ICT 분야에서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기념일은 ‘정보통신의 날’이다. 매년 4월 22일이다. 이날은 고종 21년(1884년) 우정국 설립을 기념해 정했다. 처음에는 고종이 우정총국 개설 축하연을 연 12월 4일로 정했다. 그 후 지난 1956년 ‘체신의 날’로 정했다. 다시 1972년 고종이 우정총국을 개설하라는 칙령을 내린 4월 22일로 변경했다. 1994년 체신부가 정보통신부로 확대 개편되자 ‘정보통신의 날’로 바꾸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정부 조직개편으로 정통부가 없어지자 기념식을 놓고 방송통신위원회와 지식경제부가 한때 불편한 관계였으나 지금은 두 부처가 공동으로 행사를 주관하고 있다. 법령에 의하면 방통위가 이 행사를 주관하도록 돼 있지만 우정사업본부가 지경부 산하로 넘어간 탓이다.

 반도체의 날은 10월 29일이다. 반도체 수출 100억달러 수출을 달성한 날을 기념일로 정했다. 한국 반도체는 1994년 10월 29일 첫 100억달러 수출을 달성했다. 한국반도체산업연합회는 이 날을 기념해 지난 2008년 10월 29일 첫 행사를 가졌다.

 전자의 날은 매년 10월 세째주 화요일이다. 최초로 전자수출을 한 날이자 수출 1000억달러를 돌파한 날이다. 지난 2006년 처음 제정했다.

 앞으로 ICT관련 기념일은 더 늘어날 수 있다. 반대로 산업이 퇴조하면 기존 기념일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다. 산업도 흥망의 법칙을 벗어나지 못한다. 당시 소프트웨어의 날 제정은 소프트웨어산업 육성 의지의 상징이었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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