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가 2004년 삼성전자와 LCD 부문 합작회사를 설립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양사 간 합작논의가 시작된 2003년은 LCD기업들이 대형 TV용 패널을 처음 선보인 시기였다. TV시장에서 수요가 늘면서 LCD 공급부족이 발생했다. 2004년은 보다 심각한 공급부족현상이 예고됐다. 안정적인 LCD 물량 확보는 미래 TV사업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었다. 일본기업들은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그 당시 LCD 기술력이 가장 뛰어난 샤프는 LCD를 외부에 거의 판매하지 않았다. 자사 TV용 물량을 대는 데도 부족했다. 히타치, 도시바 등은 생산규모도 크지 않은데다 중소형 사업에 치중했다. 소니는 결국 삼성전자를 합작회사로 선택했다. 삼성전자 역시 세계 1위 TV기업을 우군으로 확보할 수 있는데다 막대한 투자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니는 최고 파트너였다. 일본정부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소니는 끝내 삼성전자와의 합작회사 에스엘시디를 출범시켰다.
공교롭게도 소니는 삼성전자와 합작회사를 출범시킨 그해부터 TV사업에서 적자를 내기 시작했다. 2004년부터 8년 연속 적자에 누적 적자는 5600억엔(약 8조원)에 달한다. 일부 일본 언론은 삼성전자와의 합작을 TV 적자 주범으로 꼽는다. 삼성전자로부터 비싼 가격에 패널을 구매하다보니 원가 구조가 나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대만기업으로부터 더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데 합작사에서 구매하다보니 수익성이 나빠졌다고 나무란다. 소니가 지난 11월 발표한 TV사업 체질개선 방안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도 LCD 패널 조달비용 절감이었다. 소니는 그 후속조치로 최근 삼성전자에 에스엘시디 지분을 전량 매각키로 했다.
미안하지만 이건 핑계다. 에스엘시디로부터 가장 많은 패널을 구매하는 기업은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대략 에스엘시디 생산량 60%를 구매해왔다. 같은 논리라면 삼성전자 역시 TV사업에서 고전을 면치 못해야 한다. 삼성전자는 오히려 지난 2006년부터 TV사업 1위에 올라섰고 흑자 행진을 이어왔다. LCD 기술이 보편화되면서 최근에는 기업 간 편차도 거의 없다. 동일 규격, 동일 크기 제품이라면 삼성전자 패널이건 대만기업 패널이건 가격은 엇비슷하다. 다만 삼성전자가 좀 더 뛰어난 성능을 지원하기 때문에 일부 제품에 프리미엄이 붙을 뿐이다.
소니 TV사업 몰락은 소니가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제품디자인, 신기술, 제조경쟁력은 물론이고 공급망관리(SCM) 등에서 경쟁사에 뒤처진 것이 소니 TV 사업 실패의 핵심이다. 소니는 수십년간 국내기업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트리니트론으로 대변되는 브라운관 TV시대의 절대 강자였다. 초기 LCD TV시장에서도 소니 명성은 여전했다. 소니가 실패에 대해 보다 솔직해져야 한다. 그래야 소니 부활의 실마리도 풀린다.
유형준 부품산업부장 hjy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