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정부 지원 연구개발 성공률은 95%를 넘는다. 세계적인 기록이다. 이 같은 성공률은 문제가 있다. 연구원들이 성공가능성 높은 연구개발만을 과제로 내기 때문이다. 실패할 경우 연구비가 중단되기에 연구원들이 극단적으로 성공률이 높은 연구만 선택하고 있다.
정부 부처와 전문가 사이에서는 이 때문에 새로운 국가 연구개발 지원체계를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주하는 연구’ ‘연구를 위한 연구’ 지원을 줄이고 실패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높지만 도전적 과제에 대한 정부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는 것이다.
19일 관련기관에 따르면 최근 수년간 정부 투자로 진행된 기초원천·산업기술 R&D 모두 90% 이상 성공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성공률 높은 것이 오히려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함에 따라 일선 부처들도 R&D 정책 지원에 변화를 꾀하고 나섰다.
◇100%에 가까운 성공률=지식경제부 산업기술 R&D 성공률은 지난 2005년부터 현재까지 95~98% 수준을 보였다. 수치대로라면 기업·산업계 활용 및 특허·사업화 등에 엄청난 파급효과가 나와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개발 완료된 기술 자체로만 남은 것, 연구시한 경과에 따라 이미 시장가치를 상실한 기술 등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올해 한국연구재단을 통해 진행한 기초원천 분야 연구과제는 1만297개로 이 가운데 천재지변, 연구자 사망과 같은 이유로 연구가 중단된 극소수를 제외한 나머지가 소기의 성과를 도출했다. 기초원천 R&D는 교과부가 연구목표와 성과물을 비교 평가해 등급을 매기는 형식이다. 대부분 연구비를 따낼 때 제시한 목표에 맞춘 결과가 나온다는 의미다.
◇달라지는 ‘성공 잣대’=문동민 지경부 산업기술개발과장은 “R&D 성공률을 낮춘다기보다 현실화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우수, 보통, 성실실패, 불성실실패 4개 등급 중 우수와 보통에 점수를 많이 줬다면 R&D의 목표를 좀 더 높게 잡고 혁신적인 R&D에도 도전, 오는 2015년까지 성공률을 50%까지 현실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율래 교과부 연구개발정책실장은 “연구자들이 한 번 실패하면 다시 지원을 받기 어려운 현실 때문에 안전한 연구 분야를 선택하는 경우는 있지만 연구자들의 새롭고 혁신적인 도전이 늘어나도록 정부 정책도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조 실장은 “최선을 다한 성실한 실패라면 다시 연구비를 받아 새롭고 위험한 연구에 도전할 수 있다”며 “실패하더라도 노력을 인정해 주는 환경을 만들어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리스크 큰 R&D 정부가 맡아야=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정부 R&D가) 제대로 되려면 실패하는데 또 지원해야 하는 것이고 중소기업, 젊은 창업자들에게 많은 지원이 가야 한다”며 “새로운 분야, 새로운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게 지원해줘야 새로운 기술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새해부터 R&D 지원방식을 바꿔야 한다. 성실실패 용인 제도 확대 적용은 물론이고 창조·도전적 과제에 대한 예산 확대 등이 모색해야 한다. 무엇보다 실패 우려가 크고, 중장기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R&D 분야에 정부 지원이 확대되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진호·윤대원·정미나기자 jho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