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서만 벌써 세 번째다. 디스플레이 관련 기업들이 담합, 시장 가격을 조정해오다 벌금을 부과받은 사례가 그렇다. 지난 1월 브라운관과 10월 TFT LCD에 이어 최근에도 대규모 과징금이 부과됐다. 이번 건은 브라운관 부품인 CRT 유리 제조업체들이 담합한 혐의다.
역사도 길었다. 관련 기업들은 1999년부터 우리나라를 포함해 일본, 싱가포르에서 8년간 35회 이상 카르텔 회의를 열었다. 담합을 통해 가능한 모든 행위가 총동원됐다. 목표 가격을 정해놓고 생산량을 줄이거나 늘렸다. 거래 기업도 제한했다. 업체별로 수요업체를 정해놓는 소위 ‘나눠먹기’도 시도했다.
기업들의 가장 강력한 담합 행위를 ‘카르텔(Kartell)’이라 부른다. 이 사건은 글로벌 기업들이 모두 연루돼 있어 ‘국제적’이라는 수식어가 달렸다.
카르텔은 중세 때 국가 간 휴전협정에서 유래됐다. 어원은 서면이나 문서를 뜻하는 라틴어인 ‘카르타(charta)’에서 나왔다. 중세 유럽에서 전쟁이 벌어졌을 때 문서로 휴전협정을 체결한 것이 발전됐다. 산업화 이후에는 독일에서 기업 간 경쟁을 휴전한다는 뜻으로 카르텔을 썼으며, 근래에는 담합과 동의어로 쓰인다. 경쟁을 벌여야할 상대끼리 손을 잡는다는 의미로 ‘야합(野合)’과 통용된다.
카르텔은 1870년 이후 유럽 지역에서 확산되면서 폐해가 커지자 많은 국가가 불법으로 정했다. 대체로 시장 불황 때 가격 하락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결성되는 탓에 ‘불황의 아들’이라는 별칭이 붙는다. 경제적 용어로는 ‘방위적 카르텔’이라 부른다.
올해 초 브라운관에 이어 그 소재인 CRT 유리 카르텔은 ‘담합이 부른 담합’으로 방위적 카르텔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브라운관 시장은 수요 감소로 사실상 회생 불가능한 식물인간 상태다. 쓰러져가는 시장에서 버티기 위한 마지막 수단인지라 입맛이 개운치 않다.
얼마 전 LCD패널 업계도 미국 법원으로부터 거액의 담합 배상금이 부과됐다. LCD 시장 하락과 맞물려 나온 판결이라 이들을 향한 시선이 곱지 않다. 불경기에 기업들은 담합이라는 유혹에 시달린다. 그 유혹은 기업 스스로 경쟁력을 잃는 마약과도 같다.
서동규기자 dkse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