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이나 기업, 국가 모두 감당이 되는 지출을 해야 제 힘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럼에도 요즈음 정치권은 표 가진 사람들을 의식하고 전면 무상급식, 반값등록금에 이어 이제는 무상보육, 무상의료까지 꺼내들 차비를 하고 있다. 돈이 어디 있냐고 하면 부자한테 더 거두면 된다고 한다. 허나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복지 포퓰리즘때문에 국가 부도위기에 처한 그리스 등 유럽국가를 보면서도, 한국은 세계사에 예외가 될 듯 복지 세일즈가 한창이다.
저출산 고령화로 세금내는 사람은 격감하고, 고령화에 비례한 복지비는 증가일로다. 정책 당국의 과학기술경시로 지속가능한 경제 발전을 뒷받침할 기술 발전이 중국, 일본 등에 비해 뒤쳐지고 있는 현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과연 선진국 대열에 진입할 수 있을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된다. 비경제원리가 경제원리를 압도하는 작금의 현실도 문제지만 당장 고민거리에 관심을 안가질 수 없다. 우리나라 산업의 젖줄인 ‘전기·전력정책’이 그것이다.
최근 신문에 나온 ‘산업용 전력이 9% 늘어나고 있다’는 보도는 산업공정용(예를 들어 모터를 돌린다거나 용접기를 사용하는 등의 전기용 열처리)으로 전력 수요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순전히 공장 냉난방용으로 증가하는 것이다. 아파트형 공장에 전력이 늘어나는 것은 산업공정용이 아니라 95%이상 사무실로 사용하는 냉난방 수요 때문이다. 참고로 구로산업단지(일명 G밸리)는 1만평 이상 100개동 150만평 규모의 사무실이 전기냉난방을 한다. 이에 필요한 수요전력량은 400만㎾h로 원자력 발전기 6~7기에 해당되는 물량이다. 전국각지에 산재된 아파트형 공장 전기수요는 이렇듯 대단히 큰 물량이다.
서울대학교 건물은 수만평이다. 전기냉난방이 도시가스 보일러 및 도시가스 흡수식에 비해 가격이 저렴해 지난 2009년 모두 전기식 히트펌프(일명 시스템 에어컨)로 바뀌었다. 이 외에도 덕성여대, 안양과학대 등 상당수 학교가 특별할인된 전기요금으로 가스오일냉난방에서 전기냉난방으로 바뀌었고, 지금도 교체되고 있다. 이런 큰 규모 빌딩 냉난방을 100% 전기로 하는 나라가 대체 세계 어느 나라에 있단 말인가.
농어촌의 비닐하우스는 물론이고 식물원, 동물원, 양어장의 냉난방, 온수가열, 냉각 등도 전기사용이 늘고 있다. 과거 가스난로, 가스히터, 기름난로를 사용하던 자영업자들도 전기난로, 전기선풍기, 전기장판, 전기담요 등으로 교체하고 있다. 전기냉난방기 제조판매회사의 강력한 영업 정책도 한몫한다.
전기사용이 급증하는 이유는 화석연료를 이용한 냉난방이 전기를 이용한 냉난방보다 가격이 두 배 이상 비싸기 때문이다. 원천적으로 우리나라의 전기요금이 일본보다 세 배, 독일보다 두 배나 싸기 때문이다. 과연 전기요금을 몇 퍼센트 인상하여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실현 불가능한 이야기지만, 가령 50% 인상한다면 전기냉난방이 억제될까. 그래도 전기가 석유보다 비용이 훨씬 싼데 가능하겠는가.
사용하기 편리하고, 가격과 설치비가 싸고, 냄새없고, 이렇게 한번 길들여진 것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지금 이 순간에도 건축회사, 전기냉난방기 제조업체에 의한 전기냉난방 시설의 설치가 계속된다. 때문에 전기요금 현실화만으로는 블랙아웃을 막을 수 없다는 결론이다. 제도적으로 전기냉난방기의 설치와 사용을 억제하거나 규제하여야 한다.
‘전력대란(블랙아웃)’을 막을 단기처방으로는 전기사용 냉난방기의 판매 및 설치를 전면 금지시켜야 한다. 과거에 기름 또는 가스를 사용하던 곳은 올해부터는 전기난방을 할 수 없도록 한다. 한전은 수용가의 전력수용능력(수전변압기)을 파악하고 냉난방기의 전기공급을 최소한 억제시킨다. 지경부는 지경부고시 제2008-17호에 의거, 건축물의 냉난방시설에 대한 설치 설계 기준을 개정하고 건설부는 인허가 사항으로 이를 강력히 시행해야 한다. 고시 제2008-17호가 본래 목적과는 반대로 변형 해석돼 전기냉난방기 설치가 급증하고 있다. 손놓고 구경만 하기에는 너무 중차대한 문제다. 다시 한번 생각해서 시급히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이부섭 동진쎄미켐 회장 bslee@dongj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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