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 그시작과 끝<74>

 주말을 하루 앞둔 1996년 8월 9일 금요일 오전 9시.

 김영삼 대통령은 청와대 본관 2층 회의실에서 신임 각료와 수석비서관 등에게 임명장을 주고 차례로 기념촬영을 했다. 카메라 플래시가 이어달리기를 하듯 연달이 반짝반짝 터졌다. 김 대통령은 자리를 옮겨 신임 각료들과 차를 마시며 환담했다.

 김 대통령은 한승수 경제부총리(국무총리 역임, 현 김앤장 고문)를 비롯한 새 각료들에게 일일이 당부의 말을 했다.

 김 대통령은 강봉균 정보통신부 장관(재경부 장관 역임, 현 민주당 국회의원)에게 “정보통신이 우리나라의 선진국 진입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분야”라며 “평소 주변에서 강 장관을 높이 평가하는 말을 들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정보통신 산업을 잘 발전시켜 달라”고 당부했다.

 강봉균 장관은 청와대 일정을 끝내고 오전 10시께 정통부 청사에 도착했다. 이계철 차관(한국통신 사장 역임, 현 KT 사우회장) 등 간부들이 청사 입구에서 강 장관을 영접했다.

 강 장관은 곧장 장관실로 올라가 이 차관과 박성득 기획관리실장(정통부 차관 역임, 현 한국해킹보안협회장)과 정홍식 정보통신정책실장(정통부 차관, 데이콤 부회장 역임), 안병엽 정보화기획실장(정통부 장관, ICU 총장 역임. 현 피닉스자산운용 회장) 등과 차를 마시며 간단한 업무보고를 받았다.

 강 장관은 11시 정통부 강당에서 전 직원과 산하 기관장이 참석한 가운데 취임식을 갖고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

 강 장관은 취임사에서 “세계는 정보화의 물결에 휩싸여 있고 정보화 승패가 곧 국가경쟁력과 국민 복지향상의 관건”이라고 전제, “우리 경제의 구조적 모순인 이른바 ‘고비용 저효율’의 구조를 개선하는 것도 정보화”라고 말했다.

 강 장관은 “정보화가 이처럼 중요한 만큼 정보통신부는 반드시 일류부처, 일등부처가 돼야 한다”며 “정통부가 일류부처가 되면 한국의 정보화 역시 세계 일류가 될 것이며 앞으로 정보통신업체의 기술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기술개발투자를 지원하고 인력양성 시스템도 만들겠다”고 밝혔다.

 강 장관은 이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중소기업을 중점 육성하고 공정경쟁 룰을 만들어 정보통신 기술을 세계최고 수준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며 “기존 정책을 일관성을 갖고 예측가능하게 추진해 나가면서 보완할 점이 있으면 연구해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강 장관은 이 같은 내용의 취임사를 직접 작성했다.

 강봉균 장관의 말.

 “취임사는 항상 직접 준비합니다. 주요 내용을 메모해 정리했어요.”

 개각 발표 후 국무총리실 행정조정실장실로 취임사를 준비해 강 장관을 방문했던 구영보 정통부 공보관(우정사업본부장, 프로그램심의조정위원장 역임, 현 SK텔레콤 고문)의 기억.

 “취임식 등과 관련해 이재륜 총무과장(정보통신공무원교육원장 역임, 현 KT서브마린 대표)과 같이 강 장관을 방문했습니다. 취임사 작성은 공보관실 소관이어서 사전에 준비해 간 취임사를 드렸더니 ‘그런 것은 필요없다’고 하셨어요.”

 강 장관은 취임식이 끝나자 기자실로 내려와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가졌다.

 강 장관은 앞으로 정책 방향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제 정통부는 복합적이고 다원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부처”라면서 “일관성을 갖고 중장기적인 계획 아래 각 부처와 긴밀히 협력, 정보화를 추진해 국가 경제 및 사회 효율성을 높이는데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강 장관은 “정보화의 요체는 새로운 시스템을 창안할 수 있는 사고력에 있는 만큼, 민간의 창의력이 정보화를 촉진할 수 있게 법·제도 정비 등 정부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면서 “통신시장 개방은 세계의 흐름에 따라 무시할 수 없으므로 설득과 협상을 통해 우리가 지킬 것을 지켜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 장관의 취임은 이석채 장관(현 KT 회장)에 이어 정통부에 또 다른 변화 바람을 몰고 왔다. 두 사람은 최고의 엘리트 경제관료 출신이었다.

 강 장관은 정보통신정책과 거시경제를 연결시켰다. 정통부가 정보통신산업 정책 결정할 때마다 거시경제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해당 국장에게 질문했다. 경제 전체를 보라는 주문이었다.

 강 장관은 정책 입안 시 정기 또는 수시로 국장급 이상 회의를 소집해 토론을 하고 그 자리에서 결론을 내렸다. 강 장관은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토론을 진행했지만 내용은 빈틈없이 챙기고 점검했다.

 그는 어떤 일이든 미루지 않았다. 현안은 즉시 결론을 내고 추진했다. 고위 관료 중 일부는 대통령이 싫어할 정책이나 장관이 책임을 져야 할 업무는 차일피일 미루거나 아예 아랫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사례가 없지 않았다. 그는 책임을 피하지 않았다.

 그는 기획의 달인답게 결재서류나 보고서 등도 잘못된 점이 있으면 쭉 읽어보고 그 자리에서 바로 잡았다.

 그는 정보통신에 대해 과외공부도 열심히 했다. 취임 후 8월 18일 일요일에는 김창곤 기술심의관(정통부 차관 역임, 현 한국디지털케이블연구원 원장)으로부터 2시간여 통신망 구조와 CDMA 등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그는 이후 분야별로 ETRI 등에서 전문가를 불러 특강을 들었다.

 강 장관은 취임사에서 강조한 정책 가운데 특히 벤처산업 육성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강 장관의 회고.

 “벤처산업은 정보통신 산업의 새로운 희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국경제를 주도할 미래산업이었습니다. 당시 초창기이긴 했지만 벤처 1세대들과 매월 만나 허심탄회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강 장관은 매월 한번씩 저녁에 정통부 뒷 편 한식집에서 벤처 1세대 20여명과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나눴다. 이 자리에는 정통부 관계자가 배석하지 않았다. 통상 장관이 관련업계 인사들과 만날 때는 실무자가 배석해 주요 내용을 정리하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강 장관은 그럴 경우 가식적인 대화가 오갈 수 있다면서 관계자 배석을 불허했다.

 강 장관이 벤처기업인들과 정기 모임을 가진 것은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각종 정책에 이를 반영하는 이른바 ‘현장맞춤식 정책’의 실천이었다.

 정보통신 분야 벤처기업인들의 모임으로 그해 7월 26일 출범한 유망정보통신기업협의회 김을재 회장(금양통신 회장, 현 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의 기억.

 “매월 한 번씩 정통부 청사 뒤편 한식집에서 만났습니다. 소주잔을 돌리며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눴습니다. 당시 벤처기업들이 이런 저런 정책 건의를 했습니다. 강 장관께서 벤처산업 활성화를 위해 정책적 지원을 많이 해 주셨습니다. 코스닥 상장과 기술신보 등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당시 모임에 참석했던 사람은 김 회장을 비롯해 안경영 핸디소프트 사장, 서승모 씨앤에스테크놀러지 대표(벤처기업협회장 역임), 정영희 소프트맥스 사장(한국IT여성벤처기업인협회 부회장역임), 김혜정 삼경정보통신 사장, 임기호 내일정보기술사장(벤처기업협회 부회장 역임), 박병기 기산텔레콤 사장, 구관영 에이스테크놀러지 사장(현 에이스테크놀러지 회장), 김익래 다우기술사장(현 다우그룹 회장), 유영옥 서두로직 사장, 박병엽 팬택 사장(현 팬택 부회장) 등이었다.

 같은 벤처 1세대인 이민화 매디슨사장(현 한국디지털병원 수출사업협동조합 이사장, KAIST 교수), 변대규 휴맥스대표(현 사장), 장흥순 터보테크 사장(벤처기업협회장 역임, 현 서강대미래기술연구원장), 조현정 비트 컴퓨터사장(벤처기업인협회장 역임, 현 비트컴퓨터회장) 이영남 이지디지털 사장(한국여성벤처협회장 역임) 등이 주축이 된 벤처기업협회는 통상산업부 산하였다. 처음에는 교류가 없었다. 하지만 강 장관은 이들과도 만나 소주를 마시며 의견을 수렴했다.

 이민화 회장의 말.

 “강 장관과 대화를 나누며 벤처업계의 의견을 전달했습니다. 강 장관께서 1997년 7월 벤처육성특별법 제정에도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강 장관은 매일 아침 6시반경이면 장관실로 출근했다. 부내에서 가장 먼저 출근하는 사람이 바로 강 장관이었다. 그는 업무시작 전 집무실에서 1시간 가량 단전호흡을 하면서 건강관리를 했다.

 이 바람에 장관 비서실은 날마다 6시 반 이전에 출근했다.

 강문석 장관 비서관(정통부 지식정보산업과장 역임, 현 LG유플러스 부사장)의 말.

 “매일 강 장관 출근 전에 사무실에 나왔습니다. 아침 운동이 끝나면 정통부 뒷편 한식집이나 설렁탕집에 가서 아침을 먹었는데 식사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그 바람에 저도 밥을 빨리 먹는 습관이 몸에 배였습니다.”

 강 비서관은 강 장관과 일면식도 없었다. 그가 장관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은 우연이었다.

 강 과장은 1995년 WTO 기본통신 분야 협상실무 대표단장으로 제네바로 날아갔다. 그곳에서 일을 끝낸 뒤 재정경제원 오종남 국제경제과장(통계청장 역임, 현 서울대 과학기술혁신최고과정 주임교수)을 만나 답변서 작성 등을 밤늦게까지 도왔다. 강봉균 장관이 취임하자 오종남 씨 등이 강 과장을 비서관으로 강력히 추천했다는 것이다.

 강 과장의 기억.

 “어느 날 강 장관이 불러서 장관실에 갔더니 내정을 한 상태였습니다. 저를 보더니 ‘정말 키가 크구나’라며 ‘앞으로 열심히 일해 달라’고 하시더군요. 제가 뭐 할 말이 있나요. ‘예’하고 곧장 비서관 업무를 시작했어요.”

 강 장관은 키가 1m65㎝인데 강 비서관은 1m85㎝였다. 강 장관은 강 비서관을 쳐다보면서 업무 지시를 했다.

 강 장관은 탁상행정을 경계했다. 그래서 수시로 기업현장에 나가 현장의 문제점을 직접 확인하고 이를 개선했다. 그는 매월 기간통신사업자와 통신장비업체 등과도 정기 간담회를 열어 업계 의견을 수렴했다. 그는 현장 목소리를 중요시한 장관이었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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