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국산 TV, 포니자동차, 휴대폰과 컴퓨터 삽니다.”
아파트를 돌아다니는 재활용품 수거 자동차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다.
서울역사박물관이 ‘시민이 만드는 박물관’이라는 슬로건 아래 조선 시대 이후 2002년까지 서울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한 유물을 매입한다는 안내문이다. 기간은 오늘(22일)부터 열흘간이다. 이 가운데는 특히 해방 이후 2002년까지 의식주 등 분야별 최초 또는 1호 물품을 찾고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1호 제품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여곡절이 따르는 경우도 다반사다. 국산 최초의 TV 탄생도 예외가 아니었다.
금성사는 1960년 초 ‘금성사 발전 5개년 계획’ 추가계획으로 민수용 TV 생산에 나선다. 1963년엔 일본에서 생산기술과 시설을 도입해 부산 온천동 공장에서 시운전까지 마쳤으나 이 무렵 외환위기가 닥친다. 국내에서는 어려운 전력사정을 이유로 TV 생산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부품 수입허가도 나지 않아 생산은 벽에 부딪쳤다. 금성사의 거듭된 TV 생산 건의서에 정부는 마지못해 1965년 말 조건부 TV 생산을 허용한다.
이렇게 탄생한 국산 최초 TV가 1966년 8월 금성사 흑백TV VD-191이다. 진공관을 이용한 19인치 1호 제품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첫 생산량은 500대, 한정 가격은 6만3510원으로 당시 쌀 한가마니가 2500원이었으니 쌀 26가마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고가품이었지만 인기는 폭발했다. 국민들의 호기심과 첫 국산제품이라는 자부심이 겹쳐 급기야 공개추첨으로 판매되기도 했다.(전자산업진흥회 발간 ‘기적의 시간 50’ 참고)
당시와 지금을 비교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외국에서 부품을 들여와 조립하는 수준이었던 국내 업체들이 지금 세계 시장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디스플레이서치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삼성·LG전자 세계 TV시장 점유율은 36.9%다. 세계 인구 10명 중 4명이 한국산 TV를 샀다는 얘기다. 이 기간 삼성전자는 점유율 21.9%로 지난 2006년 1분기 이후 무려 21분기 연속 1위 자리를 놓치 않고 있다. LG는 15% 점유율로 TV명가 소니를 제치고 2위를 탈환했다. 우리나라 기업 뒤에는 소니(11%), 샤프(7.2%), 파나소닉(6.4%) 등 일본 기업이 포진해 있다.
첫 TV 주인공이 금성사(지금의 LG전자)였다면 첫 휴대폰 영광은 삼성전자로 돌아갔다. 1986년 국내 처음으로 ‘SC1000’이란 모델의 카폰을 개발한 삼성은 여세를 몰아 1989년 5월 첫 휴대폰을 선보인다. 1994년엔 SH-770 모델을 내세워 ‘한국 지형에 강하다’는 카피로 모토로라 아성을 무너뜨린다. 이름하여 ‘애니콜 신화’의 서막이다.
컴스코어가 최근 발표한 지난 6월 기준 미국 휴대폰 시장 현황 자료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지난 4월부터 석 달간 13세 이상 전체 미국 휴대폰 가입자(2억3400만명) 가운데 각각 25.3%, 21.3%를 차지해 양사 합계 시장점유율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반면 세계 1위 휴대폰 사업자 노키아는 올 들어 한번도 5위권에 들어오지 못했다. 미국 1위 사업자인 모토로라는 0.6%포인트 감소한 14.5%로 3위를 차지했다. IT 강국 코리아가 입증된 셈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삼성전자 휴대폰 신화는 1994년 구미사업장에서 500억원에 육박하는 불량 휴대폰 수십만대를 쌓아놓고 불태운 결연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세계 IT시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역사는 미래를 보는 거울이다. 최초의 TV와 휴대폰을 살펴보며 당시 가졌던 초심을 다시 한 번 일깨울 때다. IT 산업의 뿌리를 찾는 일은 더 나은 도약을 위한 첫 단추기 때문이다.
홍승모 전자산업부 부국장 smho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