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들은 겉으로 보기엔 조용하지만, 자신들만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기술은 몰라도 상품을 선택하고 품질을 따질 때만큼은 냉철하다. 고객은 소비자들의 요구를 제대로 알고 만족을 주는 기업에게 손을 들어준다.
그래서 대부분의 기업들이 ‘고객만족’을 강조한다. 하지만 소비자에게 만족을 주고, 신뢰를 얻는 일은 여간 힘들지 않다. 상품소비 사이클이 복잡해지면서 ‘소비자의 목소리(Voice of Consumer)’를 제대로 파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정보가 넘치고 소비자 기호가 까다로워진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시장의 주권이 소비자에게 이양된 시대, ‘고객만족’은 곧 ‘품질’로 통한다. 상품 선택과 사용, 재구매 등 전체 소비 사이클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품질이기 때문이다. 품질에 따라 소비자 만족 수준도 달라진다. 그래서 품질에 대한 소비자 만족 수준을 객관적으로 계량화하는 작업은 마케팅 분야의 주요 연구 대상이다.
이처럼 고객만족과 품질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이론이 ‘카노 모델(Kano Model)’이다. 카노 모델에서 품질은 크게 3가지로 구분된다. 자동차 핸들이나 바퀴처럼 기능이 없으면 제품 가치 자체가 사라지는 ‘당연 품질(Must-Be Quality)’이 첫 번째다. 그리고 두 번째는 충족되면 좋고, 없으면 불만이 생기는 요소가 ‘1차원적 품질(One-Dimensional Quality)이다. 자동차에서 연비, 승차감, 에어백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마지막으로, 없어도 괜찮지만 충족되는 경우 엄청난 만족을 주는 매력적 품질(Attractive Quality) 요소가 있다. 고객이 미처 기대하지 못했거나 기대 이상의 만족을 주는 품질요소다. 단순한 만족을 뛰어넘어 고객감동(Customer Delight)을 달성할 수 있도록 해준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자동차 에어백과 내비게이션은 매력적 요소였지만 지금은 1차원적 품질로 소비자들에게 인식된다.
이런 카노 모델은 최근 벌어진 3DTV 표준 논란에도 적용해 볼 수 있다. 소비자들은 아직 3D기능 자체에 큰 관심이 없다. 지난해 4분기 처음 조사한 세계 3DTV 시장 규모는 233만대로, 평판TV(6천917만대)의 3%에 불과하다. 사용자들은 셔터안경(SG)이니, 패턴편광안경(FPR)과 같은 어려운 3D기술 용어는 더욱 관심 밖이다. TV 품질에서 3D 기능은 있으면 좋지만, 아직은 없어도 되는 매력적 요소라는 얘기다.
삼성과 LG가 3DTV 기술 방식을 놓고 서로 헐뜯는 진흙탕 싸움을 벌인 것은 반성해야할 대목이다. 그러나 품질 경쟁 자체를 애써 자제하거나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고객에게 감동을 주는 매력적 요소를 놓고 치열하게 논쟁하는 모습은 우리기업의 품질 경쟁력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청신호다. 어느 순간, 소비자들이 3D기능을 매력적 요소가 아니라 1차원 또는 당연품질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더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 전 세계 3DTV 시장이 시끄러워지는 그 순간, 소비자들은 비로소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주상돈 전자담당 부국장 sdjo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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