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후지필름에 지난해는 잊을 수 없는 한 해였다. 롯데와 후지필름 합작사인 한국후지필름은 두 그룹에서 각별한 관심을 받았다. 후지필름 그룹에서는 모든 해외 법인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후지필름의 성공담을 널리 알렸다. 롯데그룹에서도 본사 중역 대상으로 성공사례를 발표했다. 이미지를 높인 주인공은 다름 아닌 후지필름의 즉석카메라 ‘인스탁스’였다.
한국후지필름 인스탁스는 2006년 출시한 이 후 매년 50%에 달하는 매출 성장률을 기록했다. 제품은 모든 해외 법인에서 동시에 출시했지만 히트 상품 대열에 오른 나라는 한국이 유일했다. 사실 인스탁스는 후지필름 입장에서는 틈새 상품이었다. 필름카메라에 착안한 아이디어 상품 수준이었다. 본사에서도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은 달랐다. 물량이 달릴 정도로 ‘대박’이었다. 2006년 출시한 이 후 지난해 말 기준으로 누적 판매 대수 100만대를 넘겼다. 지금까지 팔린 대수만 130만대 이상이다. 전용 필름은 1억1000만장이 팔렸다. 이는 일렬로 이어 붙이면 서울과 부산을 13번 왕복할 수 있을 길이다. 매출도 2007년 80억원을 시작으로 2009년 280억원에 이어 올해 600억원을 목표하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단일 품목으로 ‘1000억원’까지 내심 기대하는 눈치다. 이창균 사장은 “인스탁스는 유독 한국에서만 인기를 얻었다” 며 “경쟁사 폴라로이드가 디지털화에 밀려 2008년 파산한 것에 비해 한국에서 인스탁스는 독특한 사례”라고 말했다.
후지필름 글로벌 본사도 유례없는 성공에 주목했다. 지난해 9월 전 세계 후지필름 법인 사장과 임원단은 세계 사진기자재 박람회 ‘포토키나 2010’에서 한국의 마케팅 사례를 배워갔다. 후지필름 글로벌 사보 ‘후지필름 월드’는 한국의 인스탁스 성공담을 전면에 게재했다.
인기 비결은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향수를 적극 불러 일으켰고 우리나라 특유의 문화를 십분 활용했다. 여기에 제품이 기대 이상의 반응을 얻자 아예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마케팅 역량을 집중한 점도 주효했다. 강신황 마케팅 실장은 “인스탁스가 ‘빨리 빨리’에 익숙한 우리 기질과 잘 맞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인스탁스는 사진을 찍은 후 바로 확인해 다소 급한 성격에 잘맞는다는 것이다. 미니홈피 열풍도 한몫 했다. 셀프 카메라족을 위해 거울이 달린 미키 마우스 모양의 접사 렌즈는 한국에서만 판매한 모델이었다. 접사 렌즈는 일본 본사는 물론이고 각국에서 역수출 요청이 쇄도하는 상황이다. 미니홈피를 꾸미듯이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하는 여성을 공략하기 위해 동글동글한 디자인의 인스탁스에 깜찍한 미키마우스·푸우·헬로키티 등의 다양한 캐릭터를 입혀 제품도 크게 손질했다.
상식적인 유통 채널 전략을 깬 점도 성공 포인트 중 하나였다. 카메라는 흔히 전자매장에 있다는 편견을 깨고 대형 서점·디자인숍에서 판매했다. 이 덕분에 교보문고에서는 단일 아이템 중 최고의 판매 기록을 세우는 성과를 올렸다. 일부에서는 디지털 열풍에 지쳐있는 소비자에게 ‘아날로그 감수성’을 채워줬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결합한 ‘디지로그(디지털+아날로그)’ 철학을 반영한 제품이라는 설명이다. 광량 자동 조절 플래시, 조리개 조절 기능 등 디지털 기술로 사진을 촬영하지만 출력된 필름은 아날로그 시절 필름 카메라를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이창균 대표는 “우리의 급하면서도 감성적인 성향이 인스탁스 특징과 잘 맞았기 때문” 이라며 “앞으로 라이프스타일을 분석해 타깃형 제품 개발과 마케팅 전략을 펼쳐 나가겠다” 고 말했다.
<표>후지필름 ‘인스탁스’ 매출 추이 2007년 80억원 2008년 130억원 2009년 213억원 2010년 280억원 2011년 600억원(예상) 2012년 1000억원(예상)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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