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이패드를 구입한 정현선 씨(28)는 무거운 책을 들고 다니지 않아 가방이 가볍다. 읽고 싶은 책이 전자책 파일로 있는 게 아니라 아쉬운 점은 있었지만 최근 ‘북스캔’이라는 서비스를 알게 됐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종이책을 보내면 전자책 파일로 변환해주는 서비스다. 정씨는 북스캔을 받은 최신 베스트셀러 파일을 친구와 공유하고 싶어 메일로 보냈다.
정씨가 받은 북스캔 서비스는 불법이다. 종이책을 전자책 파일로 변환(스캔)해 스마트폰이나 스마트패드에서 볼 수 있는 북스캔 서비스가 빠르게 인기를 얻고 있지만 이는 명백한 저작권법 위반으로 드러났다. 자칫하면 ‘소리바다’로 대표됐던 음원 불법 유통 논란이 전자책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정부도 대응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8일 도서 출판·유통업계에 따르면 매월 출판사가 내놓는 2000여종의 신간서적 가운데 e북으로 제공하는 도서는 10종 안팎에 불과하다. 신간 서적 중 1%도 e북으로 만나보기가 어려운 셈이다. 이 틈을 노린 불법 서비스가 활개를 치고 있다.
현재 북스캔 서비스 업체는 I·D사 등을 비롯한 10여곳에 달한다. 일부 업체의 경우 지난해 말 서비스 개시 이후 매달 300% 이상 파죽지세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북스캔은 스캐너만 있으면 특별한 기술 없이도 개인이 1인 서비스를 할 수 있다. 현재 포털 카페 등에서 음성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사업자는 무수하다. 이들은 간이과세자로 신고하거나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서비스를 하고 있어 정확한 수치를 파악하기 힘들다. 탈세 위험에도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
전자책 만들기는 간단하다. 책을 스캔해 PDF 파일로 변환, 저장한 후 단말기에 옮기면 끝이다. 북스캔 업체들은 보통 페이지당 10원(흑백기준)을 받고 있다. 개인사업자는 ‘부가가치세’를 낼 필요가 없어 더 저렴하다.
가장 큰 문제는 북스캔 서비스 자체가 불법임에도 규제 방안이 없다는 점이다.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책을 개인이 아닌 제3자가 스캔하는 행위는 명백한 저작권법 위반이다.
이들은 저작권 논쟁을 막기 위해 변환된 전자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름, 이메일, 아이디 등 소유자 정보를 표기한다고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파일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등 전혀 강제성이 없다.
북스캔 서비스 업체의 한 관계자는 “본인이 소유한 책을 스캔해 전자책으로 활용한다면 저작권 문제는 없다”라고 설명했지만 ‘본인만’ 활용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낮다.
상황이 이렇자 일각에서는 북스캔 서비스가 지난 2000년대 초반 불법 음원 유통의 온상이었던 ‘소리바다’ 사건이 재현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출판업계 관계자는 “당시 소리바다에는 DRM을 갖추지 않은 불법 MP3파일이 한해 7000억원 규모로 범람했다”며 “아직 북스캔 서비스가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아 특별한 사건은 없지만 조만간 전자책 파일도 웹상에서 불법으로 떠돌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저작권보호과 한 관계자는 “현재 상황을 파악해보고 있으며 북스캔은 명백한 저작권법 위배 사례”라며 “정부 차원에서 제재를 적극 검토하기 위해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이라고 밝혔다.
※저작권법 제30조(사적이용을 위한 복제)
“공표된 저작물을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아니하고 개인적으로 이용하거나 가정 및 이에 준하는 한정된 범위 안에서 이용하는 경우에는 그 이용자는 이를 복제할 수 있다”
허정윤기자 jyhur@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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