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O년 봄은 닷컴 버블 붕괴로 온 세계가 몸살을 앓았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김대중 정부 시절 IT 벤처는 우리 경제의 희망이었지만 얼마 못가 풀이 꺾였다. 그로부터 1년쯤 뒤, 지금보면 한 10년 전 인듯 싶다. 당시 “한국 경제는 IT 산업이 회생시키고 있고, 그 배경에는 다름 아닌 PC방이 있다”는 말이 회자됐다. 실제 그랬다. PC방은 세계적으로 가장 앞선 초고속 인터넷의 현장, 발빠른 한국 IT의 현주소였다. 그때부터 우리 IT 산업의 질주는 거침없었다. ADSL에서 시작된 유선 초고속 인터넷의 동력은 세계 첫 IMT-2000 서비스, 4세대(G) 이동통신인 와이브로 상용화에 이르기까지 4~5년간 ‘IT 코리아’의 명성을 만들어냈다. 핵심 원천기술도, 자원도 없었던 한국이 단기간 내 IT 선진국 반열에 오른 비결이 무엇인지에 해외의 관심이 온통 쏠려 있던 시기였다. 당시 한국 IT산업의 저력은 이랬다. 통신서비스가 차세대 IT 투자를 견인하면, 단말기·장비·SW·애플리케이션·부품 등 후방 산업계가 자연스럽게 동참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구조였다. 선진국들이 통신사업자 인허가와 요금·접속료 규제 등 이른바 공정경쟁 규제에만 머물렀지만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었다. 신규 IT 시장을 선도하는 선순환 구조까지 이끌어냈던 것이다.
불과 몇 년이 흘렀을까. 지금 한국 IT산업의 위상은 말 그대로 격세지감이다. IT산업의 정점에 있는 통신서비스 업계는 차세대 투자의 여유도, 생각할 겨를도 없는 분위기다. 갑작스럽게 다가온 스마트폰 시장과 이에 따른 가입자 확대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1년 이상 지속되는 스마트폰 충격 속에 여전히 대다수 설비 투자가 데이터 트래픽을 해소할 망 투자에 집중되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으로 보인다. 늘 그랬듯 정부의 물가 정책에 휘둘려 이번에도 요금 인하 이슈가 단골 메뉴로 등장했다. 그 와중에 가장 큰 수혜자인 애플·구글은 이익 분배 대상으로 거론조차 되지 않는다. 오히려 불과 몇 년 전까지도 통신 시장의 경쟁 구도를 좌우했던 신규 서비스나 요금의 위상을 누리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손 놓고 있는 사이 IT 코리아의 실체가 불과 몇 년만에 허상으로 비쳐질 만큼 추락했다는 느낌에 답답함을 지울 수 없다.
서한 국제담당 차장 hse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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