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기의 빠른 복사 성능을 나타내는 용어인 ‘패스트카피(fastcopy)’가 최근 휴대폰 업계에서 회자되고 있다. 복사기뿐만 아니라 컴퓨터 파일을 빠르게 옮긴다는 뜻으로 사용되던 이 용어는 올 들어 휴대폰 업계로 넘어오면서 ‘빠른 아이디어 도용’으로 변질됐다.
국내외에서 휴대폰 시장 점유율 선두권인 한 기업은 올 중반 이후부터 타사 제품을 가장 빨리 베낀다는 의미로 ‘패스트카피 컴퍼니’라는 비아냥 섞인 별칭도 얻었다. 디자인에서부터 패키징, 이어폰과 같은 악세사리까지 경쟁제품과 거의 흡사한 전략 스마트폰을 출시한 이후부터 이 별명이 따라 붙었다. 업계에서는 이 업체가 보유한 금형이 워낙 많아 경쟁사에서 좋은 제품을 출시하면 보름만에 거의 비슷한 제품을 찍어낼 수 있다는 식의 구체적인 ‘카피 스케줄’까지 내놓을 정도다.
올 하반기에는 대다수 휴대폰 업체들이 특정 제품 특징을 본딴 신제품들을 내놓기 시작하면서 업계 전반을 통칭하는 용어로 확대됐다. 특히, 휴대폰 명가 소리를 듣던 한 업체는 한발 더 나아가 정체성마저 사라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업체가 불과 몇 년전에 선보였던 휴대폰들은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100미터 밖에서도 구별된다는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올 들어서는 타사 제품과 섞어놓으면 코 앞에서도 구분이 안된다는 얘기가 들리고 있다. 이제는 개성이 없어졌다는 뜻의 ‘몰개성’으로 불리기까지 한다.
반면에 얼마전까지 존재감조차 없었던 한 대만업체는 ‘차별화’를 무기로 앞세운 제품들로 글로벌 시장에서 파죽지세로 성장하면서 국내 업체들의 코 앞까지 추격해왔다.
내년에는 스마트폰을 넘어서 다양한 스마트패드까지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다른 영역으로 치부됐던 컴퓨터 업체들도 발벗고 뛰어들고 있다. 이제 ‘빠른 카피’만으로는 더 이상 설자리가 없다.
수년 전 ‘똑같은걸 하느니 차라리 죽지’라는 카피를 내걸었던 모 통신사 광고가 화제를 모았었다. 이 광고 주인공은 파격적인 퍼포먼스 공연으로 단박에 세계적인 미술가 반열에 올랐던 백남준 선생이었다. 국내 휴대폰 업계에 이 카피를 꼽씹어보길 권한다.
서동규기자 dkse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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