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옷장 속 깊숙이 넣어둔 내복을 꺼내면서 지난 3월 입적한 법정스님의 산문집이 문득 떠올랐다. 산문집에는 고인이 된 동화작가 정채봉에게 내복을 선물받은 사연이 담겨 있다.
“제가 첫 월급을 타던 날 누군가 곁에서 어머니 내복을 사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한테는 내의를 사드릴 어머님도 할머님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스님의 생신에 무엇을 살까 생각하다가 내의를 사게 된 것은 언젠가 그 울음으로도 풀 수 없는 외로움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겨울만 되면 즐겨 입던 예전의 빨간 내복은 첫 월급 탄 자녀들의 부모님 선물 1순위였지만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이제 그 빨간 내복은 추억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다.
예전에는 옷맵시가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부분 내복을 입지 않았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내복이 겨울철 필수 패션 아이템으로 부활하기 시작했다. 내복 인기가 부활한 배경은 무엇보다 디자인과 기능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내복이 옷맵시를 망친다는 말은 옛말이 되어버렸다.
또 다양한 색상과 세련된 디자인으로 선택의 폭도 넓다. 얇고 보온성이 뛰어난 발열 내복이 나오면서부터 더 이상 따뜻함을 위해 몸매를 희생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요즘 내복은 옷 안에 덧입어도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몸에 밀착되어 착용감이 좋다.
내복을 선택할 때는 무엇보다 먼저 실용성과 입는 목적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얇고 가벼운 소재로 된 내복은 무난하게 입기에 좋고, 추위를 많이 타거나 겨울 레포츠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따뜻한 발열 소재를 택하는 것이 좋다.
내복은 우리 몸 밖으로 발산되는 열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에 체온을 유지시켜 준다. 따라서 내복을 입으면 수분이 내복과 피부 사이에 머무르면서 체온을 보호해주는 효과를 낸다. 외부로 빠져나가는 열을 내복이 막아주어 추위를 덜 느끼게 된다.
겨울철에 내복을 입으면 에너지 절약뿐만 아니라 개인 건강에도 이롭다. 하루 종일 보일러를 켜놓다 보면 실내공기가 건조해져 호흡기 질환을 유발하거나 아토피와 같은 피부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 내복을 입으면 체감온도가 3도 정도 올라가기 때문에 내복을 입고 실내 적정온도(18~20도)를 유지하면 적절한 습도를 유지할 수 있어 건강을 지킬 수 있고 숙면도 취할 수 있다.
결국 내복을 입는 일은 나 자신을 따뜻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실내온도를 낮춰 연료비를 절감하게 되며 요즘처럼 고유가시대엔 경제를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얼마 전 에너지관리공단 주관으로 서울 용산 역사 안에서 ‘에너지사랑 따뜻한 겨울나기 내복 입기 패션쇼’가 열렸다. 이 패션쇼는 범국민적 내복 입기 문화 확산을 통해 겨울철 적정 실내온도 준수 및 녹색생활 실천을 유도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로 패션쇼 현장에서는 다양한 이벤트가 진행되어 시민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머지않아 석유 위기가 올 것’이라 경고했던 미국 프린스턴대 데페이에스 교수의 메시지는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그가 제시한 궁극적인 대안은 ‘정육점 주인이 고기를 대하는 자세로 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에너지를 소중하게 아껴 쓰라는 뜻이다.
디지털시대에 아날로그 아이콘인 내복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옛날 빨간 내복이 그리운 요즘. 우리 모두 내복 입고 따뜻한 겨울을 맞이하자.
김수영 에너지관리공단 인천지사장 komsooyoung@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