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IT+혁신조직` 통합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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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정보책임자(CIO)의 역할이 정보기술(IT) 부문을 넘어 비즈니스 경쟁력 강화와 경영 혁신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는 IT가 기업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는 긍정적인 신호인 동시에 IT가 새로운 도전을 향한 시험대에 올랐다는 것을 뜻한다.

IT 조직과 경영 혁신 조직이 단순한 이론상의 결합을 넘어 회사 내 조직과 기능 차원에서 실질적으로 융합되는 조직 개편 사례가 최근 들어 잇따라 눈에 띈다.

이는 CIO가 혁신을 이끄는 리더로 거듭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혁신이라는 거대한 카테고리 속에서 기존 CIO의 역할을 놓쳐버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최근 주요 대기업에서 불고 있는 `IT+혁신` 조직 구축 열풍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IT+혁신`의 등장=2000년대 중반 이후 주요 대기업의 대규모 IT 투자가 일단락되자 CIO에게 새로운 과제가 주어졌다. `비용센터(Cost Center)`인 IT 조직을 `수익센터(Profit Center)`로 바꾸는 것. IT 인프라 효율화를 넘어 비즈니스 경쟁력 강화와 경영 혁신에 기여하는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에 따라 CIO의 덕목과 조건도 바뀌기 시작했다. `IT 전문가여야 한다` `아니다, 현업 출신이어야 한다` 식의 이분법적 접근이 아니라 IT에 대한 전문성과 현업의 경험을 두루 갖춘 하이브리드형 인물을 선호하는 식으로 바뀌었다.

`IT 조직에서만 20년 넘게 근무했다` 식의 자기소개는 더 이상 CIO에게 장점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CIO 한 사람 바뀐다고 해서 IT 조직이 혁신의 역할을 수행할 수는 없다. CIO가 IT와 혁신 모두 역량을 갖췄더라도 조직과 권한이 이를 뒷받침하지 않으면 소용없다.

이에 따라 주요 기업이 IT+혁신 조직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기존 경영전략 파트를 중심으로 진행되던 혁신 업무를 IT파트와 결합하는 것이다.

◇확산되는 `IT+혁신` 바람=LG디스플레이는 지난 7월 업무혁신담당으로 돼 있던 조직을 업무혁신센터로 격상시켰다. 센터는 IT 인프라를 기획 · 개발 · 운영하는 전통적인 IT부서 역할에 회사 전반의 혁신을 주도하는 기능이 더해진 곳이다.

LS산전은 지난 4월 IT지원실의 간판을 경영혁신실로 바꿔 달았다. 별도로 운영되던 혁신기획팀이 IT지원실로 이관되면서 경영혁신실로 변경됐다.

이들 IT+혁신 조직의 최대 장점은 효율성이다. 기존 조직 구도상에서는 IT와 혁신 조직이 시너지 효과를 내기는 어렵다. 혁신 조직이 모든 어젠다를 마련하고 IT 조직이 이를 따라가는 구조에서는 그저 `혁신 지원`이라는 또 하나의 숙제가 IT에 주어진 것에 불과했다.

반면에 앞서 언급한 기업처럼 IT와 혁신이 하나의 조직과 리더 아래 편제된 기업은 시너지 효과를 꾀할 수 있다. 혁신 방안을 수립하는 첫 단계서부터 IT 연계방안이 함께 검토되기 때문이다.

먼저 A라는 혁신안을 마련한 후 B라는 IT 정책을 A 모양에 억지로 맞추는 기존 조직구도의 비효율성을 막을 수 있다. 처음부터 A와 B를 연계한 C라는 `IT혁신`안을 만들어 효과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IT와 혁신 조직을 바로 결합하기보다는 협업을 강화하는 방식을 택한 곳도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혁신사업부서가 혁신활동을 주도한다. 혁신사업부서가 전체 테마와 방향을 설정하면 사업조직별로 구체적인 혁신 과제를 수립해 실행한다.

이 과정에서 IT 조직은 때로는 앞에서, 때로는 뒤에서 혁신을 지원한다. 비즈니스 중심의 혁신사업에서는 대개 후발로 참여한다. 신기술을 이용한 사내 혁신의 경우에는 IT 조직이 먼저 제안해 혁신 프로젝트를 주도하기도 한다. 전통적인 IT 조직과 IT+혁신 조직의 중간형으로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문화를 갖췄다면 효과를 볼 수 있는 구조다.

물론 아직은 전통적인 IT 조직에 머무르는 곳도 적지 않다. 특히 금융권은 IT와 혁신 조직을 결합하기보다는 IT 조직이 현업부서의 혁신을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몇몇 금융권 CIO가 현업의 요구에 앞서 먼저 프로세스 혁신을 이끌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공식적인 권한을 갖고 전사 혁신을 책임지는 경우는 드물다.

금융업의 특성상 IT 인프라가 고객 서비스와 직결되기 때문에 CIO가 IT에 집중해야 한다는 요구에서 비롯됐다는 해석이다.

◇`형식은 통합, 내용은 위상약화` 가능성도=기업의 주력사업과 비즈니스 환경이 각기 다르고, 조직 규모와 형태도 상이한 만큼 `IT+혁신` 조직의 정답은 없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 가운데 분명히 오답은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 여름 한 제조기업의 CIO가 회사를 떠났다. 그가 이끌던 IT 조직은 둘로 나뉘어 경영관리조직 아래로 흡수됐다. IT를 전사 혁신과 연계해 시너지를 꾀한다는 목적이었지만 내부 직원들은 임원 수를 줄이는 `슬림화`의 과정으로 인식했다.

또 다른 기업은 지난해 경영 혁신 산하로 IT 조직을 통합했다. 역시 조직 슬림화의 목적이 컸다.

IT+혁신 조직이 업무상 시너지 효과를 내기 보다는 조직 통폐합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이다. 특히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조직을 단순화하려는 경향이 확산되면서 이 같은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IT+혁신의 대명제인 시너지 창출과 실행력 강화가 아니라 조직 통합을 주목적으로 진행하면 둘 중 어느 한쪽은 단순히 지원하는 역할에 그칠 수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또 다른 문제점은 CIO와 조직의 역량이다. 기반이 잘 갖춰졌더라도 CIO를 포함한 조직원의 역량과 협업문화가 뒤따르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IT와 현업이 서로를 이해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역량과 경험을 지녀야 한다는 지적이다.

IT와 함께 사내 6시그마 운동인 `컨티뉴어스 임프루브먼트(Continuous Improvement)`를 관장하는 정현석 한국화이자제약 전무는 “기술과 비즈니스 교육을 동시에 강화하고 상호 커뮤니케이션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CIO에게 혁신을 이끄는 기능을 부여했더라도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자질이 없으면 무의미하다. 최근 IT와 현업 경험을 두루 갖춘 하이브리드형 CIO가 관심을 모으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IT+혁신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지만 구조조정을 위한 조직 통합 차원에서 진행하거나 실행 역량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는 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각 사의 환경에 맞춰 최적의 IT+혁신 조직을 찾아가되 충분한 준비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정미 한국IBM 컨설팅사업부 파트너는 “일반적으로 기업이 수많은 혁신을 시도하지만 그 성과가 제대로 축적되거나 관리되지 못하고 단기적인 성과 제시용으로 그치는 문제점이 있다”며 “효과적인 IT+혁신 조직의 결합을 통해 이들 문제점을 구조적으로 극복해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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