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양정보센터 소장님, 올해도 추석이 가까워 오고 마음은 벌써 고향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평양에 다녀온 지 벌써 10년이 지났습니다. 인자하시던 그 모습과 마누라가 끓여주는 토장국이 제일 맛있다던 정감 어린 기억이 새롭습니다. 떠나기 전날 정보센터에서 마련해 주신 송별회도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술을 한 잔 한 후 마음에 있는 말을 허심탄회하게 하는 호탕한 기운을 북한에서도 느꼈습니다. 연구원들도 잘 있겠지요.
어려운 개발환경에도 불구하고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음을 강조하며, 남쪽에서 어떠한 일도 맡겨 주면 최고의 열정과 성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이야기하던 후배들의 열정도 그립기만 합니다. 단동에 개설된 하나정보센터에 불편한 몸을 이끌고 연구원들 교육을 위해 몇 번 다녀갔다는 이야기를 그곳 사장을 통해 들었습니다.
김일성대학 소프트웨어 공학센터 연구소장님과 박사과정 학생들이 추운 겨울 한기에도 아랑곳없이 프로그래밍에 열중하던 모습은 저희 어렸을 때 난방이 안 된 교실에서 공부하던 기억을 새롭게 해주었습니다. 김일성대학 방문 날, 입시 체력장 시험에 자식의 합격을 위해 같이하던 북한 부모님들의 열기 또한 어떤 상황에서도 `자식에 대한 교육`과 `너만은 나보다 잘살아야 한다`는 우리 민족의 가치관이 이념의 벽을 뛰어넘어 북한에서도 존재하는, 한민족의 저력의 씨앗으로 남아 있음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지요. 하지만 남북 관계는 전혀 진전되지 않은 가운데 오히려 정보통신 분야 협력은 퇴보한 것 같습니다. 당시 같이 방문했던 몇몇 기업인과 저 같은 학자들이 추진하려던 사업도 결실을 보지 못하고 평양과학기술 대학의 개교 소식에 일말의 희망을 걸어봅니다.
지금 세계는 정보기술을 활용해 실시간으로 협력하고 이를 통해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초(hyper) 협력과 경쟁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인종과 국경이 무의미해지고 협력을 통해 경쟁력 있는 가치를 제공하는 기업과 국가만이 생존하는 공영의 세계로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민족 만 이렇게 경제적 측면에서도 불완전한 협력을 해야 하는 기가 막힌 처지에 이르고 있습니다. 만국 만민이 공영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는 상황에 정치적 경직성 때문에 경제적 교류 협력이 번번이 중단되는 현실이 하루 빨리 해결되기 바랄 뿐입니다.
이러한 처지에도 10년 전 느낀 우리민족의 저력의 씨앗을 생각해봅니다. 따끈한 된장국,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열정, 자식과 미래를 위하여 부모님 자신의 세대를 기꺼이 바치는 희생정신, 배움을 갈망하는 문화민족의 전통. 이러한 것들은 지난 60년간 체제의 벽을 뛰어넘어 아직도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는 우리 민족을 연결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통일 이후에 남과 북을 융합시키는 뜨거운 불의 역할을 할 것이고 이를 기반으로 한민족은 또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할 것이라는 확신을 다시 한 번 다짐하며 통일과 번영의 문이 열리기 기원하고 있습니다. 북핵, 6자회담, 북미대화, 바세나르 협정, 천안함 폭침과 같은 어려운 상황도 우리 민족이 지난 5천 년간 국난 속에서도 간직했던 저력을 빼앗아가지는 못할 것입니다. 세계 정보통신, 소프트웨어 시장을 석권하는 시발점인 통일의 그 날을 간절히 기다리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부디 건승하십시오.
안준모 건국대 경영대학 교수 joonan@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