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전 스위스 세계경제포럼(WEF)에서 한국의 국가경쟁력이 139개국 중 22위를 기록했다는 발표가 있었다. 또한 국가브랜드 평가기관인 독일 안홀트-GMI가 한국의 국가브랜드지수(NBI)를 50개국 중 31위로 평가했다. 순위야 어떻든 간에 국가경쟁력이나 국가브랜드를 정의하는 개념 자체가 모호하다는 점과 조사방법 등에 있어서 논란이 제기되면서 결과에 대해서 크게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 같다.
중요한 점은 국가경쟁력이나 국가브랜드 모두 경제성과 등의 수량적인 지표가 핵심이지만, 제도나 이미지 등과 같이 질적인 지표도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점이다. 이제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은 기업과 정부의 몫이 아닌 국민 모두에게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 콘텐츠가 프리미엄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모방의 경쟁력이 아닌 혁신의 경쟁력, 즉 상상력과 창의력, 그리고 융합력으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영국은 1998년부터 문화미디어체육부(DCMS)와 비즈니스혁신기술부(BIS)가 협력하여 창조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 있으며, 도시의 재생과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서 12개의 창조산업 클러스터(Cluster)를 구축하였다. 이를 통해 전통, 숙련기술과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전문공급자들이 문화예술품(도자기, 미술품 등), 명품 소비재(패션의류, 구두, 선글라스 등)를 생산하고 있다.
최근 일본은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 세계 경쟁력을 지닌 콘텐츠를 바탕으로 음식, 관광, 일용품, 패션 등 라이프스타일과 연계해 글로벌 비즈니스를 확대하는 `문화산업 대국지향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 배경은 한국의 한류 붐이 중국, 태국, 베트남 등 아시아에서 패션, 콘텐츠, 소비재(가전 등) 판매로 연결되어 큰 성과를 내고 있으며, 아시아의 트렌드 센터라 할 수 있는 홍콩인들이 한국제품에 대해서 일본보다 `시대를 이끌어 가거나 활기와 기세를 느낀다`고 응답한 비율이 훨씬 높다는 조사결과에서 비롯되었다. 이처럼 일본은 소프트 파워로서 문화산업을 자동차, 전자산업과 나란히 일본경제를 이끄는 산업으로 설정(국가 아젠다)하여 일본의 경제발전을 위한 `신성장 전략(2020)`에 포함하여 추진하고 있다.
중국도 국무원(총리 원자바오) 차원에서 `문화산업진흥계획`(2009년 9월)을 발표하였다. 그 배경이 국제금융 위기라는 새로운 정세와 문화영역의 개혁과 발전이 시급히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이에 따라 전통과 하이테크 기술의 융합, 문화산업과 정보통신, 관광, 제조 등 업계 간의 융합 등을 통해 문화산업을 근간으로 한 중국 전체의 경제 활성화를 위해 정책지원과 지속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세계 193개국이 참여하는 2010 상하이엑스포도 문화교류와 첨단 융합산업이 만나는 올림픽이 되고 있다.
현재 우리 콘텐츠산업은 2012년 디지털 전환, 스마트폰과 앱스토어에 따른 유무선 통신사업자와 기기제조사의 비즈니스 전환, 미디어법(신문법 · 방송법 · IPTV법) 개정에 의한 신문방송겸영 등 미디어빅뱅에 직면해 있다. 이처럼 콘텐츠와 미디어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시점에서 콘텐츠 서비스와 미디어 기기의 창조적 융합이 시너지가 크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를 위해 콘텐츠산업을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포함한 경제 전체와 연계시켜야 할 것이다.
한국은 스포츠 강국이다. 하계와 동계 올림픽에서 모두 10위 안에 드는 성적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천 경쟁력은 스포츠 시장규모가 아니라 스포츠를 좋아하고 즐기는 국민성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무대에서 공정한 경쟁을 통해 금메달을 따기 때문이다. 국내 콘텐츠산업에서 가장 확실한 경쟁력 지표는 바로 우리 내수시장에 있다는 것을 먼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생각해 보면, 매일 아침저녁도 모자라 주말까지도 드라마에 열광하는 주부들이나, 인터넷과 모바일을 이용한 온라인 게임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일상적인 젊은이들, 그리고 학습만화로 교육과 오락(에듀테인먼트)을 동시에 습득하는 어린이들이 있기에 우리나라가 드라마, IT, 온라인게임, 교육 등에서 세계 강국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내수 소비를 바탕으로 콘텐츠가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때 한국영화 점유율도 50% 대를 유지할 수 있고, 캐릭터 뿌까(세계 120 개국 진출)나 애니메이션 뽀로로(세계 108개국 진출)가 해외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최근에 국내 아이돌 그룹들의 활발한 해외진출도 한국 대중가요의 보이지 않는 경쟁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제 창의적 융합기술로 콘텐츠 원천을 시장경쟁력으로 전환하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할 때이다.
노준석 한국콘텐츠진흥원 산업분석팀 과장 yes0253@kocc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