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6월 21일 미국의 컴럼비아 레코드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히트곡 모음집과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64번을 각각 한 음반에 담아 출시했다.
유성기로 틀 수 있는 최장 연주 시간이 5분이던 시절, 30분가량의 협주곡을 한 음반에 담은 것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컬럼비아는 이 음반을 오래 들을 수 있는 레코드라는 뜻으로 LP(Long Play의 약자)라고 이름지었다.
지름 30㎝에 플라스틱 소재로 만들어진 LP는 음반 한 장으로 1시간의 음악 재생이 가능한 시대를 이끌었다. LP의 등장은 산업적인 이유에서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절정에 달했던 음반산업은 당시 TV의 출현으로 위기에 처했고, 레코드 판매량은 급감했다. 음악산업계는 불황을 타개할 새로운 포맷이 필요했고, 컬럼비아 연구원 윌리엄 배크먼과 피터 골드마트가 만든 것이 LP였다. 이후 LP는 거의 반세기 가까이 음악을 듣는 대표적인 매체로 자리 잡았고, 음악산업도 활황을 누린다. 1949년 11개사에 달하던 LP발매사는 1954년에는 200개까지 늘었다.
LP의 등장은 산업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 다양한 영향을 끼쳤다. 한 음반의 수록곡끼리 통일성과 유기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나타났고, 대기업에서 취급하지 않던 독특한 장르의 곡들도 나와 음악을 풍성하게 했다. LP가 없었다면 엘비스 프레슬리가 그토록 많은 히트곡을 남기기도 힘들었고, 핑크 플로이드 역시 741주 동안 빌보드 차트에 머문 명반 ‘Dark side of the moon’으로 프로그레시브 록의 새 역사를 쓰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LP 자체가 음악이었던 명성을 뒤로 하고, 1980년대 CD가 나오면서 LP는 쇠락의 길을 걷다 1990년대 중반 생산이 중단됐다.
2000년 이후 음악을 소비하는 주된 방식은 디지털 음원과 MP3플레이어(혹은 아이폰)가 됐다. 한 곡씩 내려받을 수 있는 디지털 음원의 특성과 소비방식의 변화로 스토리텔링이 있는 음반보다 한 곡 혹은 서너곡만 담은 디지털 싱글 출시가 대세를 이룬다.
혹자는 이를 두고 음악의 종말이라 우려하기도 하지만 과거 LP의 등장처럼 음악의 창작과 소비 방식의 새로운 변화를 줄 것이란 낙관론도 공존한다. 싸고 쉽게 유통할 수 있는 구조 때문에 인디밴드들이 대규모 자본을 빌리지 않고도 마이스페이스나 아이튠스를 통해 자신의 음악을 전 세계에 알리기도 하고, 음악을 통한 교류·기부 등의 활동도 기대된다.
LP의 낭만은 점차 사라지겠지만, 인류가 살아있는 한 음악은 지속될 것이고 또 다른 낭만이 만들어질지도 모르겠다.
이수운기자 pero@ 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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