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우리 사극에서 볼 수 있는 임금은 중국 벼슬의 1품을 상징하는 황색을 못 입고, 3품 관리가 입는 붉은 색을 입었을까.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조선백자 용문양의 발톱 개수는 중국 용문양의 발톱개수보다 항상 적을까. 아마 중국의 영향을 받던 당시는 세세한 문화적 표현에서조차 자유롭지 못했으리라….
그렇다면 현재 한국의 문화적 표현은 곤룡포와 같은 구속에서 완전히 자유로운가. 불현듯 지난해 한 패션업체에서 주관한 트렌드 설명회에 참석한 때가 떠오른다. 파리, 런던, 밀라노, 뉴욕 4대 컬렉션에서 글로벌 디자이너들이 발표한 패션을 국내 디자이너에게 전달하는 행사다. 패션과 관련된 모든 사항이 거대 스크린과 현란한 해설로 국내 디자이너에게 그대로 전달되고, 수백명의 국내 업체 디자이너들이 그 해설을 일사불란하게 받아 적는 모습이 홍색 곤룡포와 오버랩이 돼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제품생산 2년 전부터 서구 문화중심의 유행예측 시스템을 따라 색체와 소재를 기획하고, 6개월 전에 발표되는 각종 해외 컬렉션의 디자인을 카피해 패션제품이 제작되고, 글로벌 브랜드의 라이선스 잡지를 통해 유행정보가 확산되고 있는 현실. 과연 문화적으로 자유로운 것인가. 아니면 글로벌 트렌드를 추종하는 것은 수출경쟁력을 강화해야 하는 세계화 시대에 피할 수 없는 생존방식일까.
하지만 이러한 생존방식에도 불구하고 한국패션 글로벌 경쟁력은 긍정적이지 않다. 2009년 문화관광연구원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 이후 한국 패션은 마이너스 성장을 보이고 있다. 내수시장에서 글로벌 브랜드의 시장잠식이 가속화되고 있고 세계시장에서의 시장점유율도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섬유, 의류에 지원되는 예산은 지자체를 제외한 지식경제부에서만도 1000억원의 규모가 넘고 한국에서 배출되는 패션인력의 규모는 세계적인 수준이다. 패션산업은 물리적 시설보다 창의적 기획력이 성패를 좌우하는 시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패션산업 발전을 위한 이정표를 이전과는 다르게 수정할 때다. 질적인 성장에 주목할 때다. 이를 통해 문화적 관점으로 한국 패션의 근본적인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전 세계 1조달러 규모의 패션시장을 움직이는 힘은 트렌드라는 감성가치며, 이러한 감성가치를 선도하지 못하면 저부가가치 생산구조가 고착돼 침체의 길에서 벗어날 길이 없기 때문이다.
2010년 2월 뉴욕 맨해튼의 중심인 퍼블릭 라이브러리에서 개최된 ‘컨셉트 코리아’는 한국 패션디자이너와 해외 유명 아티스트들의 협업을 통해 한국패션 컨셉트를 수립하고 한국의 음악, 음식 등 다양한 콘텐츠와 연계한 이미지를 세계에 알렸다는 언론의 평가를 받고 있다. 문화로 성장하고자 하는 한국패션 지원에 대한 정부의 첫 발걸음이다.
패션은 한 시대의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이 그대로 투영된 대중의 취향이기 때문에, 한국 패션은 우리 라이프스타일의 브랜드다. 문화가 근간이 되는 패션정책은 국가브랜드의 구축에 필수적인 요소며 국가브랜드는 긍정적인 감성가치를 형성해 한국패션의 고부가가치를 선도한다. 따라서 이러한 행사를 통해 문화와 연계한 한국 패션의 근본 역량 강화가 현재 한국패션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핵심 열쇠임을 다시 한번 공감하는 기회로 삼아, 단기적 지원보다는 긴 호흡으로 멀리 내다보는 장기적 문화정책이 지속되길 바란다. 한국패션은 이제 문화로 성장해야 한다.
이윤경 문화관광연구원 책임연구원 yunky@kct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