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마루’는 넘어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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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일 44번째 생일 잔치가 열린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개원 기념식이 끝나고 이색 이벤트가 마련됐다. 얼마 전 공개된 가사 도우미 로봇 ‘마루-Z’가 VIP에게 직접 꽃다발을 전하는 순서였다.

 행사 참석자들이 하나둘 시연장소로 모이고 기대 속에 마루-Z가 장미 꽃다발을 들고 한 발짝 걸음을 내디뎠다. 순간, ‘꽈당’하는 소리와 함께 마루-Z가 앞으로 쓰러졌다.

 예상치 못한 사고에 로봇을 조작하는 KIST 연구팀의 얼굴이 굳어졌다. 서둘러 로봇을 일으켰지만 기대했던 이색 꽃다발 증정식은 볼 수 없었다.

 한꺼번에 많은 관람객이 몰리면서 바닥의 울림 등이 마루-Z의 민감한 센서에 영향을 줬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마루-Z의 작은 소동(?)을 보며 아쉬움도 남았지만 KIST 44주년 기념식의 의미를 오히려 다시 한번 꼽씹어 볼 수 있었다.

 KIST는 매년 개원 기념식을 했지만 올해는 그 의미가 남다르다. 지난해 한홍택 신임 원장의 취임 이후 연구를 위한 연구원이 아닌 ‘기업가정신의 산실’로 거듭나려는 노력이 한창이다.

 오로지 연구에만 몰두했던 KIST의 40여년을 뒤로 하고 ‘기술사업화’와 ‘세계화’에 매진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기업·대학과 네크워크를 구축하고 연구실에 갇혀 있던 기술을 ‘돈’으로 연결하는 등 어느 것 하나 만만치 않다. 국내 문화에 적응하기 쉽지 않은 해외 석학들을 유치해 안정적 연구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새로운 숙제로 부각됐다.

 한 원장은 취임 이후 ‘긴 호흡의 연구’를 늘 강조해왔다. 연구를 매개로 한 각종 사업을 추진할 때에도 이처럼 차근차근 내공을 쌓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마루가 탄생한 지 이미 5년이 넘었다. 그동안 꾸준히 연구를 거듭해 가사 도우미 역할까지 해내는 오늘날의 마루-Z로 진화했다. 비록 마루-Z는 넘어졌지만 준비된‘한 걸음’의 중요성을 각인시켜줬다.

김유경기자 yuky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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