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9회말 2아웃’에 스무 살의 내가 서른 살의 나에게 편지를 보내는 장면이 나온다. 집은 나섰지만 아직 방향을 못 잡은 여행객처럼 모든 게 낯선 스무 살이 서른 살의 나에게 묻고 싶은 것, 다짐하고 싶은 것을 편지지에 쓴다. 그 설레임과 겁없음이 녹아내린 편지를 서른 살이 돼서 받아보면 어떨까. 이미 서른 살의 시절이 지났는데도 따라해보고 싶다. “이때가 좋았지. 되돌아가고 싶다”며 향수에 젖는 사람도 있고 “와, 이럴 때가 있었네. 어리고 어리도다”라며 무릎에 얼굴을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거는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다. 스무 살의 나는 서른 살의 나를 쳐다보고 있고 서른 살의 나는 스무 살의 나를 등에 업고 있다. 굳이 10년 전의 편지로 기억을 되새기지 않더라도 내 몸에 쌓이고 내 품성에 덧대진다.
교육생들에게 3개월 후의 나에게 편지를 쓰게 하고, 3개월이 지나면 부쳐주는 프로그램이 있다. 대체로 “열심히 하자, 넌 잘할 수 있다, 때론 힘들겠지만 힘을 내자, 늘 성장하는 멋진 나를 가꾸자” 등 결심의 말이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스스로에게 듣는 위로와 격려의 말, 칭찬과 약속의 말이 어느 누구의 말보다도 속속들이 파고든다. 과거는 우리를 응원하고 우리를 지켜본다. 더 나아지고 있는지, 그때 한 약속은 지키고 있는지, 과거에 치렀던 아픔이 가치 있게 새겨졌는지 바라보고 있다. 매번 같은 다짐을 하고 같은 후회를 하는 ‘만년초보’라면, 지켜보는 과거도 섭섭하다. 과거에게 보람이 있도록 과거보다 나아지자. 과거는 잊어버리면 그만인 것이 아니다. 어제의 비료가 있어서 오늘이 비옥해지는 것이고 어제의 잠 못 드는 밤이 오늘 편안한 밤을 만드는 것이다. 어제의 절박한 순간을 잘 넘기고 깨달아야 오늘 찬란한 순간을 만들 수 있다. 과거가 나에게 보낸 편지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도록 오늘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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