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경마장 옆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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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말에 ‘만화-한국만화 100년’ 기념 전시회를 관람하기 위해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다녀왔다. 전시장에는 일요일 가족 나들이 관람객이 주를 이루었으나 그리 많은 수는 아니었다. 전시회는 한국 만화 100년의 역사와 관련해 만화가와 관계자들이 오랜 기간 준비한 정성이 돋보이는 내용으로 가득차 있었다. 흔히 이런 전시회는 상업성을 띠기 쉬운데 관계자들의 자세한 설명은 만화를 우리나라 순수 창작 콘텐츠로 자리 매김시키기에 충분했다. 이날 국립현대미술관에는 한국미술 소장품전 등 다섯 가지 전시회가 동시에 열리고 있었다. 어느 전시장을 가도 한산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전시장을 나온 오후, 집에 가기 위해 도착한 경마공원역은 하나같이 굳은 표정을 한 수많은 탑승객으로 붐볐다. 사소한 부딪힘에도 여기저기서 고성이 오갔고 처진 어깨를 힘겨워하고 있었다. 재미삼아 하는 소수를 제외하고는 누구나 이곳에서 ‘한탕’을 꿈꾼다. 그러나 꿈을 이루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관람객은 줄잡아 80만명 정도다. 연간 입장료 수입은 6억6000만원이었다.

 한때 100만명에 육박한 적이 있지만 여기도 경기침체의 영향을 비켜가지는 못하고 있다. 경제적 여유가 없으니 문화생활을 누리는 사람도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미술관 측은 예년보다 많은 전시회를 올해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40년 행사도 많다. 그런데도 찾는 이는 늘지 않는다.

 한국마사회에 따르면 지난해 경마 수입은 7조4219억원으로 작년의 6조5402억원보다 13.5%나 늘었다. 2007년 경마 인구는 연 2168만명으로 처음 2000만명을 돌파했다. 대표적인 프로스포츠인 프로야구의 지난해 관중이 500만명을 약간 넘은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치가 아닐 수 없다. 가족 입장객도 늘어나는 추세라지만 ‘경마꾼’이 여전히 많다. 경기가 안 좋으면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이 많아진다고 한다. 그래서 경마나 카지노를 ‘불황의 그늘 속에 피는 꽃’이라고 부른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다. 선진국이라는 단어는 문화강국의 또 다른 이름이다. 문화 선진국을 가르는 기준은 그 문화가 가진 스펙트럼이 얼마나 다양하고 폭넓은지로 결정된다. 미국과 서유럽의 선진국이 문화강국이라 불리는 것은 잘 보존된 유구한 역사뿐만 아니라 예술을 사랑하는 국민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난해 11월 말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명박 정부의 문화정책 기조가 “품격 있는 문화국가, 대한민국”이라며 “요란한 문화활동보다는 국민 모두 생활 속에서 문화적 삶과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문화나 예술을 다른 무엇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예술 자체가 목적이 되는 순수한 가치를 확대하고 작품의 질을 높여 세계에서 인정받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문화부는 세계 5대 콘텐츠 강국 도약을 위한 신성장동력으로 향후 5년간 차세대 융합형 콘텐츠 육성과 제2의 온라인게임 혁명, 100년 감동의 킬러콘텐츠 개발 등 3대 핵심과제에 1조23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동물원 옆 미술관’과 경마장은 서로 이웃이다. 썰렁한 국립현대미술관, 충혈된 눈으로 스크린과 경주장을 바라보는 경마꾼으로 넘쳐나는 서울경마공원이 우리 문화의 현주소를 말해주는 듯해 씁쓸하다.

 홍승모 생활산업부장 smho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