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을 꿈꾸던 대통령 당신을 보냅니다

29일 오전 경북궁서 영결식

 재임기간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생’을 꿈꿔왔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민들의 가슴에 오늘 잠든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은 29일 오전 서울 경복궁 앞뜰에서 수많은 시민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장으로 엄수된다. 서울광장 노제를 거쳐 수원 연화장에서 유해를 화장, 봉하마을 사찰 정토원에 안치된다. 49재 이후 봉하마을 뒷산 장지에 묻히게 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1946년 김해 봉하마을에서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나 부산상고를 졸업한 뒤 인권변호사, 국회의원, 대통령을 거쳐 63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영호남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노력한 그에게 지지자들은 ‘바보 노무현’이라는 애칭을 붙였고, 2002년 인터넷 열풍을 타고 ‘세계 최초의 인터넷 대통령’이 됐다. 대통령 재임 기간에 탄핵사태, 열린우리당 파당 등의 사태를 겪으면서도, 도덕성과 소신을 무기로 격동의 현대사를 헤쳐왔다. 퇴임 직전인 2007년 8월 군사분계선을 넘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 대북관계에서 뚜렷한 업적을 남겼다.

 그는 중소기업 대통령으로도 불린다. 그가 취임 후 2년여가 지나도록 대기업 총수를 만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건희 전 삼성 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최태원 SK 회장, 강신호 전경련 회장 등을 청와대로 초청해 만난 것은 2005년 5월 24일 ‘대기업 및 중소기업 상생협력 보고회의’에서였다. 중소·벤처기업도 함께 불러 대기업에 힘 없고, 쪼들리는 중소·벤처기업을 도와주고 협력할 것을 권하는 자리였다.

 당시 청와대에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대기업 이야기만 나오면 고개를 젓던 (고 노무현) 대통령이 이날만큼은 선뜻 나왔고, 그 취지에 큰 힘을 실어주셨다”고 회고했다. 노 대통령은 중소·벤처기업이 빠진 기업 생태계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전체 기업의 99%를 차지하는 중소·벤처기업을 배제한 기업 정책은 짜지 않겠다는 소신은 그의 재임 기간 내내 이어졌다.

 그의 이런 의중으로 인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이라는 물꼬가 터졌고, 그해 10월 50대 대기업과 4000여개 중소·벤처기업이 참여한 협력박람회로 이어졌다. 정부는 ‘중소기업 육성 시책 기본 방향’을 새롭게 제시하고 중소기업 정책 혁신 12대 과제, 자영업자 대책, 정책자금 개편 방안 등을 잇따라 내놓았다.

 29일 영결식까지 기업대표들의 조문이 잇따랐다. 세간의 시선은 기업들이 고인과 얽혔던 감정의 실타래를 풀기 위한 행보로 보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는 대한민국 생산과 소비의 주체인 중소·벤처기업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상생의 염원이 담겼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그를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생이라는 이상을 추구한 인물’로 평가했다. 노 전 대통령은 영면했지만 ‘대중소 상생’이라는 그의 이상은 영원하다.

  유형준·이진호기자 hjy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