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명의 근원은 불이다. 인류는 불을 사용함으로써 다른 동물과 구분되기 시작했다. 불을 이용해 자연을 극복할 수 있었고, 지구를 지배하게 됐다. 아직도 불을 사용할수 있는 동물은 지구상에 인간뿐이다. 불을 사용함으로써 인간은 신에 가까운 존재가 될 수 있었다. 그러기에 제우스는 인류에게 불을 선물한 프로메테우스를 혹독하게 벌했다.
불은 가장 원초적인 에너지다. 다루기도 힘들고 저장하기도 힘들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신성한 불씨를 보존하는 전통은 아직도 여기저기에 살아 있다.
문명의 발달과 함께 불도 진화해왔다. 전기는 그 꽃이다. 전기는 불을 저장하고, 전달하고, 또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는 편리한 에너지로 바꿀 수 있게 했다. 바로 전력이다. 언제 어디서든 이용 가능한 에너지, 즉 전력 없는 현대 문명은 상상할 수 없다.
전 지구촌에 불어닥친 저탄소 녹색성장 바람도 기실 불 때문이다. 급속도로 발전해온 인류 문명에 비례해 불의 소비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 결과 인류는 에너지원의 고갈과 지구 온난화라는 대재앙에 직면해 있다. 마치 인간에게 불을 선물한 프로메테우스가 독수리에게 간이 파먹히는 고통을 당한 것처럼.
에너지 없는 문명이 존재할 수 없기에 지구온난화라는 대재앙을 해결해 줄 열쇠도 에너지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전 세계가 초미의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지능형 전력망으로 불리는 스마트 그리드가 그것이다.
전기는 불을 전력으로 진화시키는 데 그치지 않았다. 실시간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해주는 정보기술(IT)도 낳았다. IT는 속도와 효율성을 무기로 거대한 정보화 혁명을 일으켰다. 스마트 그리드는 정보화혁명의 무풍지대였던 전력에 IT를 결합시킨 것이다. 지능을 가진 불이기에 에너지 절감과 안정적 전력공급은 물론이고 화재 방지 등 엄청난 부가가치도 창출한다. 미 콜로라도주 볼더에 있는 텐드릴이라는 전력회사는 스마트 그리드를 통해 무려 40%의 에너지를 절감했다고 한다. 전력 소비자는 어디서, 누가, 어떻게 만든 것이고, 언제 사용하는 게 경제적인지를 알아보고 또 선택할 수 있다. 내가 사용하는 전력이, 전기 제품이 얼마만큼의 탄소를 배출하는지도 알려준다. 탄소배출량을 줄이지 않는 에너지와 제품은 살아남기 힘들다. 말 그대로 에너지가 곧 정보요, 정보가 에너지가 되는 세상이다. 스마트 그리드는 현대판 프로메테우스의 불이다. 프로메테우스의 불이 인류 문명을 싹틔웠듯이 스마트 그리드는 뜨거워지는 지구를 식혀주는 마법의 불인 셈이다.
한국의 전력과 IT는 보급률에서든 기술에서든 단연 세계 최강이다. 전국 어디든 전기가 없는 곳이 없고, 정보통신망이 깔려있지 않은 집이 없다. 품질과 속도에서 따라올 곳이 없다. 하지만 둘은 언제나 따로였다. TV수신료도 전기료에 통합돼 나오지만 통신료만큼은 별도다. 도도한 정보화 혁명이 전력만큼은 비켜갔다. 전력분야는 대한민국 정보화 혁명의 마지막 관문이다. 한국에서 스마트 그리드란 정보화 혁명의 종착역이자 저탄소 녹색성장의 ‘알파(α)와 오메가(Ω)’인 셈이다. 세계 최강 전력과 IT가 만나는 스마트 그리드가 어떤 일을 낼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이 중차대한 사업이 너무 멀리에 있다는 점이 아쉽다. 2011년 시범단지를 조성하고 2030년에야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좀 더 빨리 앞당길 수 없을지 절로 조바심이 난다.
유성호 논설위원 shyu@wt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