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날씨가 풀려서인지 점심을 먹을 때 가게 주인이 문을 열어도 춥지 않고 오히려 시원한 느낌까지 들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외풍이 심해 어느 식당이건 문 주위는 모두들 피해서 맨 마지막 손님 차례였다. 이렇듯 봄은 왔건만 작금의 IT분야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한 것 같다. 하지만 역발상으로 중국 4대 미인인 왕소군이 흉노에 시집간 이후 장기간 태평성세를 구가하고 역사적으로 긴 세월 동안 선비들에게 훌륭한 문학 소재를 제공한 것처럼 IT분야도 건설·전력 등 일견 생소하게 보일 수 있는 분야와 결혼해서 결국 뉴밀레니엄 블루오션으로 거듭날 것으로 확신한다. 이는 순수 IT분야에서는 조금 어색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중국 한나라 절세 미인 왕소군과 관련해 전해오는 얘기는 다음과 같다. 남군의 양가집 딸로 태어나 황제인 원제 시절 전국 각지에서 궁녀를 모집했을 때, 18세라는 꽃다운 나이로 후궁에 선발됐다고 한다. 당시 황제는 수천명이나 되는 궁녀를 모두 면접할 시간 여유가 없어서인지 화공 모연수에게 궁녀들의 초상화를 그리게 했다.
따라서 모든 궁녀는 화공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앞다퉈 뇌물을 바쳤지만, 왕소군만은 황제를 속일 생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가난했던 터라 여력도 없었다. 괘씸하게 여긴 화공은 왕소군을 평범하게 그리기에도 부족해 얼굴에 큰 점까지 찍어 버린다.
그래서 빼어난 자색에도 불구하고 왕소군은 원제를 알현조차 하지 못한 채 5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기에 이른다. 그때 남흉노의 호한야 선우가 많은 진상품을 가지고 원제를 알현하면서 사위가 될 것을 청한다. 크게 만족한 황제는 한나라 황실의 위엄을 과시하기 위해 먼저 총애를 받지 못한 후궁들로 하여금 호한야에게 술시중을 들도록 하게 된다. 궁녀들 중 그간 숨겨졌던 절세미인 왕소군을 발견한 호한야는 즉석에서 공주가 아니라도 좋다면서 왕소군을 요청한다.
크게 후회하면서도 황제의 위엄상 번복하지 못하게 된 원제는 급히 후궁으로 가서 궁녀의 초상화를 대조해 보니 왕소군의 그림이 실물과 전혀 다르지 않은가. 결국 화공은 황제를 기만한 죄로 참수된다. 왕소군은 평생 다시 못 볼 장안을 떠날 때는 따스한 봄이었건만, 시집간 흉노 지방은 여전히 추워서 ‘춘래불사춘’이라고 표현했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현명했던 왕소군은 흉노가 친정인 한나라와 우호관계를 유지하도록 내조에 주력하고, 흉노 여자들에게는 길쌈 방법도 가르쳤다고 한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약 1세기 동안 흉노와 한나라 간에는 전쟁이 없는 태평성세가 유지된다. 이렇게 이역만리 흉노에 시집와서 그 서러움을 ‘춘래불사춘’이라고 표현한 왕소군의 애처로운 얘기는 우리나라, 중국 등지에서 길이 후대 문인들에게 훌륭한 소재로 제공된다.
그간 IT 분야는 예산 삭감, IT 컨트롤타워 부재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보통신부가 해체돼 그 기능이 방송통신위원회·행정안전부·지식경제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여러 부처로 분산되고 청와대 IT담당의 직급 한계로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국익을 위해 중차대할지라도 관심을 끌지 못한 정책은 추진 동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게 된다. 반면에 국가적으로는 우선순위가 떨어지지만 사회적으로는 이슈가 되기 시작하면, 중복 정책이나 투자에 대한 논란은 지난 정부와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특히 IT 컨트롤타워의 부재로 인한 이러한 난맥상은 왕소군의 전래에서 화공이 얼굴을 평범하게 그려 황제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것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화공이 황제를 기만했는지는 먼훗날 역사가 증명해야 할 몫으로 남게 된다.
춘래불사춘이라는 표현도 후대인들에게 다시 못 볼 친정을 떠나 이역만리로 시집간 왕소군에게 대한 애처로움을 더해줄 수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현명했던 왕소군의 처세로 인해 장기간에 걸친 친정과 흉노 간 평화를 유지시킴과 동시에, 우리나라나 중국 등지에서 길이 후대 선비들에게 훌륭한 문학 소재를 제공해 왔다는 사실에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이다. IT분야, 특히 순수 IT분야가 건설이나 전력 등 다른 분야와의 결혼, 즉 디지털 융합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IT분야의 춘래불사춘 현상을 반전의 호기로 삼아, 뉴 밀레니엄 블루오션으로 거듭나게 하는 우리 모두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오재인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 jioh@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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