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대 이후 전 세계가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 생존하는 방법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수렵사회, 농경사회를 지나 산업혁명을 시작한 유럽과 이를 빠르게 받아들인 일본 등은 지금도 선점자의 권익을 누리고 있다. 근래 20여년간 정보통신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은 새로운 기회를 창출했고, 우리나라도 정부 주도로 이에 발빠르게 대응해 정말 오랜만에 세계 1위에 해당하는 품목 또는 종목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네트워크 인프라, 휴대폰, 초고속 인터넷 등 이른바 연결성(connectivity)이 강조되는 제품들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그 좋았던 선점적인 포석 이후 이렇다 할 연속성을 보이지 못하고 도리어 수시로 악수를 두고 말았다. 그토록 좋았던 IT 시장에서의 기회를 전략적으로 살려내지 못한 것이다. 초기의 기술 기반 신생 기업들을 키워내지 못했고, DJ 정부는 황당한 CBO 발행 등으로 시장을 왜곡했으며, 이후에도 중소 벤처기업을 지켜주지 못했다. 이에 따라 기술 기업의 대표 자본시장인 코스닥은 기술 기업 성장의 산실이 되기보다는 금융 기술자들의 전술 시장처럼 돼버렸다. 여기에 MB정부 들어 IT에 대한 정책적 우선순위 급하락과 함께 그나마 구심점 역할을 해 온 정통부마저 해체되면서 자긍심을 갖고 일류를 노리던 IT 종사자들이 방황하고 있다.
정책적 우선순위가 바뀐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IT가 어느 정도 성장해 자생력이 있다는 정책적 판단일 수도 있고, 더 이상의 성장은 시장 기능을 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 IT 현실이 아직은 혼자 버틸 수 있을 만큼 성장하지 못한 곳이 많다는 것이다. 휴대폰이나 반도체 LCD 등 제조 IT는 분명 성장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솔루션, e비즈니스, 보안기술, 무선시장 등은 세계시장에서 명함도 내밀기 어려운, 그러나 부가가치가 제조 IT보다 높은 분야들이다. 사실 생산유발, 고용유발, 중간투입률, 수요유발 같은 계수를 비교하면 같은 예산을 IT와 IT산업에 투입하는 것보다 건설에 투입하는 것이 더 불합리하게 나올지 모른다. 또 건설 산업 활성화와 IT 산업 활성화는 지향하는 목적이 같지 않다. 건설은 사실상 내수 진작을 위한 목적이 크며 마치 크게 한 상 차려 먹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IT는 우리가 지난 십수년간 개발하고 사용하고 소비하며 우리나라의 핵심 역량으로 떠올랐으며 아직은 세계시장에서 경쟁적 우위를 가지고 있는 분야가 많다.
다행히 정권 출범 직후 IPTV 법이 부족한 대로라도 통과됐고, 시간이 가면서 정부가 IT를 각 산업에 접목시키는 작업도 시작했다. 아직 우려되는 것은 시장이 자생할 수 있을 때까지 정부가 과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적절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지다. 과거 IT839와 같이 산업과 시장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 채 밀어붙임으로써 무리한 항목이 포함돼 추진되고, 필요한 항목이 제외돼 제대로 된 투자 수익률을 확보하지 못한 전철을 거울삼을 필요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책의 입안과 수행에서 행정(administration)으로 하지 말고 전략적 정책 실현과정(strategic policy management)으로 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과거 정부가 수행한 결과를 무조건 부정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말고 이를 활용할 줄 아는 지혜를 발휘했으면 한다. 즉 과거 정부가 지은 5층을 부수고 다시 짓기보다는 그 위에 10층을 지어 올려 진정한 IT 강국을 만드는 것이 진정으로 칭송받는 정권이 될 것이다.
김병초 한국외국어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bckim@hufs.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