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리포트/1면/마니아 소비문화, 아키하바라 변화의 단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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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아키하바라 신흥 관광의 명소, 도쿄 애니메이션 센터/각종 전자제품을 판매하는 이시마루덴키와 라옥스 등이 몰려있는 JR아키하바라 덴키가이 출구/로봇에 관한 모든 것을 보여주는 쓰쿠모.

 JR 아키하바라역에 도착하면 여러 출구 이름이 보인다. 특별한 용무가 없다면 지하철 히비야센과 요도바시 카메라로 갈 수 있는 쇼와도리 출구나 아키하바라의 메인 거리와 연결된 덴키가이(電氣街) 출구를 이용하게 된다.

 전기·전자 제품을 파는 상점가가 몰려 있기 때문에 붙여진 JR 아키하바라역의 덴키가이란 이름이 사라지거나 다른 이름으로 바뀌게 될지도 모르겠다. 덴키가이에 있어야 할 ‘덴키’가 갈수록 폐업하거나 다른 업종으로 전환하고 있는 탓이다. 실제로 지난 10월 말 아키하바라에서 거의 유일하게 로봇 서적과 부품을 판매하는 매장을 따로 둘 정도로 전기·전자 제품에 애착이 강했던 쓰쿠모가 우리의 화의제도와 유사한 민사재생법을 신청했다.

또 지난달 3일에는 이시마루덴키 PC관이 폐점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이시마루덴키는 아키하바라 일대에 본관, 생활가전관, 소프트관 등 총 8개의 점포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일본 전역에 28개의 점포를 운영 중인 중견기업이다.

이들의 사례는 앞으로 ‘덴키가이’로서의 아키하바라의 이미지에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시대상을 반영한 아키하바라의 변신=사실 아키하바라의 변화는 시대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띠었다. 아키하바라의 시초는 2차 대전 후 라디오 트랜지스터 판매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의 전기·전자 부품을 팔던 이미지는 현재 주오도리의 대형 전자 부품 판매상인 와카마쓰나 게이머즈 본관 뒤편의 소규모 전자 부속품 판매점이 모여 있는 곳 등에서나 알 수 있다.

라디오 트랜지스터와 같은 전자제품 부속품을 팔던 곳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모습이 바로 가전제품 양판점으로서의 아키하바라다. 일본의 고도 성장과 맞물려 생활가전의 수요가 상당부분 아키하바라와 같이 가전 제품 전문 매장이 몰려 있는 곳으로 집중됐다.

하지만 ‘비쿠 카메라’와 ‘요도바시 카메라’와 같은 전자제품 카테고리 킬러의 등장은 아키하바라의 변화를 가속화시켰다. 증권시장을 통한 자금 조달의 용이함과 내수 진작을 도모하는 일본 경제 정책의 효과로 1980년대 초기부터 중반까지 전국적인 체인망을 갖춘 전자제품 양판점이 급속도로 증가하게 된 것이다.

또 자동차 보급 증가로 교외의 대형 쇼핑몰에도 전자제품을 사기 위한 발걸음이 이어졌다. 결국 가전제품 양판점으로서의 아키하바라의 입지가 줄어들게 됐다.

이러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아키하바라가 선택한 것은 바로 퍼스널 컴퓨터(PC)였다. 애플의 매킨토시,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3.0 그리고 일본IBM의 DOS/V 등이 1980년대 중반 발표되기 시작했고 아키하바라 일대 종합 전자제품 양판점에도 점차로 ‘PC관’이나 ‘컴퓨터관’ 등의 이름으로 신규, 혹은 전문관이 들어서게 된 시기도 바로 이때다.

PC의 보급과 함께 관련 수요가 급증하고 기업도 이에 발맞춰 빠르게 증가했다. 라옥스 컴퓨터관이나 아키하바라에 10여개의 매장을 갖춘 소프맵, 컴퓨터 관련 제품을 판매하는 매장으로 아키하바라 내에서 가장 큰 축에 속하는 쓰쿠모 이엑스를 소유한 쓰쿠모 그리고 컴퓨터 DIY 전문 매장을 표방한 티존 등이 대표적이다.

◇마니아 공간 이미지 급속 확산=2000년대로 넘어온 아키하바라는 기존의 전기·전자 제품 이미지에 마니아적인 요소가 더해지게 된다. 이전의 마니아적 이미지가 지극히 한정적·제한적이었다면, 현재의 아키하바라는 드라마나 영화라는 상품에 종종 그 은밀한 모습을 배경 이미지로 보여주며 ‘마니아 공간’이라는 이미지를 급속도로 확산시키고 있다.

도쿄도에서도 이러한 추세에 편승이라도 하려는 듯 2006년 3월 새롭게 오픈한 인텔리전트 빌딩인 UDX에 ‘도쿄애니메이션센터를 선보였다. 애니메이션 센터는 UDX 4층에 있으며, 내부에는 무료로 애니메이션을 관람할 수 있는 대형 스크린, 애니메이션 전문 라디오 방송국, 그리고 각종 관련 기념품 등을 팔고 있다.

아키하바라의 이러한 마니아적인 이미지 확산 속에 2007년 후반 소프맵이 새로운 시도를 감행했다. 소프맵의 리뉴얼이 바로 그것. ‘소프맵 타운’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진행된 소프맵의 리뉴얼은 아키하바라 곳곳에 산재해 있던 소프맵 점포의 전문화, 분산화가 목표다. 아키하바라 내에서 컴퓨터 관련 매상은 1990년대 중반 이미 가전제품의 그것을 앞지르게 됐다. 하지만 이후부터 내리막길로 접어든 컴퓨터 관련 제품 매상은 새로운 블루오션을 찾아야 했고, 이에 대한 해답으로 소프맵은 마니아층을 겨냥한 전문화의 길을 택한 것이다.

현재 소프트맵은 아키하바라에만 10여개의 점포를 운영 중이다. MAC/크리에이터 점포, 중고 컴퓨터 점포, 중고 디지털/모바일 전문관, 어뮤즈먼트관 등 해당 점포에서 각기 다른 제품을 팔고 있다. 소프트맵 판매 제품의 구성이 기존에는 컴퓨터 관련 제품이 많았다면, 앞으로 만화·영화 등의 캐릭터 상품, DVD·CD와 같은 엔터테인먼트 상품의 비중이 늘어날 전망이다.

◇오타쿠 상징 만다라케 입성=지난 4월 만다라케콤플렉스가 아키하바라에 오픈했다. 그것도 PC 전문점인 오레콘하우스 자리에 말이다. PC 전문점 자리에 들어섰다는 것 자체도 의미심장하지만 일단 만다라케란 기업이 아키하바라에 대형 점포를 오픈한 것에 주목해야 할 듯하다.

 만다라케는 오타쿠의 성지라고 불리는 도쿄 나카노 브로드웨이의 터줏대감이다. 1980년 만화 전문 고서점으로 출발해 지금은 만화를 비롯해, 동인지·코스프레·피규어 제품, 그리고 소설까지 판매하는 대중적인 마니아 상품 전문 매장이다. 도쿄를 비롯한 일본 전역에서 볼 수 있는 만다라케는 유독 아키하바라와 인연이 없었는데 이번에 마니아 공간으로서의 아키하바라의 미래를 보고 대규모 투자를 한 것이다 . 그것도 그냥 만다라케가 아닌 콤플렉스란 이름으로, 역대 만다라케 매장 중 가장 큰 규모로 말이다.

소프트맵과 만다라케콤플렉스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앞으로 아키하바라의 마니아적인 이미지는 한층 강화되리라 본다. 소비 심리가 살아나야 지난 10년간의 일본 버블 경제 암흑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일본.

혹자는 이러한 버블 속에서도 마니아 계층만이 지속적인 소비 패턴을 유지해 왔다며, 앞으로도 마니아의 심리를 자극해야 일본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고 한다. 마니아의 소비 문화와 일본 경제의 부흥, 앞으로 아키하바라 변화의 단초가 아닐까 한다.

 도쿄(일본)=김동운 태터앤미디어 일본 블로거(doggul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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