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21세기의 광맥 ‘어번 마이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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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어번 마이닝(urban mining)’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직역하자면 ‘도시 광(산)업’쯤 된다. 꽤 아이러니한 단어의 조합이다. ‘도시’와 ‘광산’이라니. 흔히 ‘광산’ 하면 땅에 굴을 뚫고 깊이 들어가 광물을 캐오는 일을 떠올리게 된다. 물론 몇몇 나라에서는 광물이 지면으로 드러나 있어 ‘노천 광산’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는 하지만, 역시 도시와는 관계가 없다.

 어번 마이닝은 휴대폰이나 컴퓨터 등의 폐전자 제품에서 금속자원을 추출, 회수하는 산업이다. 휴대폰과 같은 전자제품은 더 작고 더 가볍게 만들기 위해 전도성이 뛰어난 금을 기판에 쓰고 있고, 다른 가전제품 기판에도 금, 은을 비롯한 많은 희귀금속이 쓰이고 있다. 가전제품 기판뿐 아니라 최근에는 검정색 잉크 속에 들어 있는 등의 금속을 뽑아낼 수도 있다.

 요즘 전 세계는 ‘어번 마이닝’에 빠져 있다. 각종 광물이 고갈되고 있는 이 시점에, 곡괭이를 들고 산으로 들어가 찾지 않아도 되는 ‘21세기의 금맥’인 어번 마이닝이 각광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최근 2∼3년 새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것도 이러한 경향에 큰 영향을 주었다. 어번 마이닝에 가장 열을 올리고 있는 나라 중 하나가 바로 이웃 일본이다. 일본도 우리나라처럼 자연 자원이 풍부하지 않은 나라다.

 일본 독립행정법인인 물질재료연구기구가 지난 1월 발표한 바에 따르면 일본 폐가전 속에 있는 금 축적량은 약 6800톤에 이른다. 이는 전 세계 금 매장량의 16%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어번 마이닝은 효율도 높다. 광산에서 1톤의 금광석을 캐면 약 5g의 금을 채취할 수 있을 뿐이지만 1톤의 폐휴대폰에서는 150g의 금과 73㎏의 은, 100㎏의 구리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어번 마이닝에 관한 한 일본 버금가는 ‘전자 대국’인 우리나라의 가능성도 무척 크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우리나라에 잠재돼 있는 860만대의 폐전자 제품을 재활용하면 금 3574㎏, 팔라듐 1572㎏, 은 20톤 등을 추출할 수 있다고 밝혔다. 돈으로 따지자면 무려 2000억원에 육박한다.

 우리나라도 이런 폐전자 제품 재활용을 위해 지난 1992년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으며 2003년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로 바꾸어 실행하고 있다. EPR는 생산자가 폐기물의 일정량 이상을 재활용하도록 의무를 부여하고 재활용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벌금을 징수하는 제도다. 현재 전자제품 중에는 TV·세탁기·냉장고·에어컨·PC·오디오·휴대폰·프린터·팩시밀리·복사기 총 10개 품목에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 양이 일본에 비해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특히 희귀금속 재활용률은 매우 저조한 편이다. 어번 마이닝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아직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혹시 서랍에 쓰지 않는 휴대폰을 방치해두고 개인정보 유출이 두려워 PC 재활용을 꺼리고 있는지? 우리나라처럼 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어번 마이닝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10년 전 우리는 나라가 IMF 환란을 맞았을 때 누구랄 것 없이 장롱 속에 고이 넣어두었던 아이 돌반지까지 꺼내 ‘금 모으기’에 동참했다. 쓰지 않는 폐가전 재활용에 적극 나서는 일이 바로 ‘제2의 금 모으기’가 될 수 있다. ‘어번 마이닝’을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할 때다. 고재영 한국환경자원공사 사장 jyko@envico.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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