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초 서울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 인권문제가 처음으로 공식 거론됐다. 한미 두 정상이 북한주민의 인권을 개선하는 데 공동 노력하기로 한 것이다. 한국정부는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해서 북한 인권문제를 적극적으로 거론하는 것을 자제해 왔다. 그러나 세계 각국은 자국은 물론이고 다른 나라 국민의 인권상황까지도 개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는 탈냉전 이후 변화된 국제질서 속에서 인권에 대한 세계인의 생각이 달라진 데 기인한다. 한국정부도 달라진 인권 개념을 북한에 적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북한의 인권문제는 주로 탈북자, 정치범 수용소 생활, 납북자 등 특정 집단에 집중 조명돼 왔다. 이러한 대상들은 북한 인권문제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냉전시대에는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동서 양 진영의 정치군사적 대립으로 상징됐다. 자연스럽게 안보문제는 군사적 안보가 주를 이루었다. 탈냉전 이후 군사적 안보보다 더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인간안보다. 인간안보는 1994년 UNDP에서 처음으로 개념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은 누구든지 공포와 궁핍에서 자유로워질 권리가 있으며, 그 핵심이 바로 인권이다. 세계 각국은 지구상에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인간이 공포와 궁핍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거론된 북한 인권문제도 바로 북한주민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회복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북한주민의 현실은 어떤가. 언제 식량이 떨어질지 몰라 항상 불안하다. 아이들은 영양부족으로 키가 크지 않는다. 미국이나 남한이 북한을 군사적으로 공격할 것이라는 정치선전술로 인해 북한주민들은 항시 공포에 싸여 있으며 외부세계에 대한 적개심과 경계심으로 뭉쳐 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현실의 곤궁함을 달랠 수 있는 종교도 허용되지 않는다.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은 차단돼 있다. 북한당국은 살기 위해 불가피하게 형성된 부정부패구조를 끊는다는 명분으로 주민들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리랑 공연과 같은 소모성 정치공연은 매년 성대하게 치르고 있다. 지방의 주민들은 굶든 말든 평양시내 단장에 여념이 없다. 평양주민들은 외국에서 귀빈이라도 오면 열렬한 환영행사에 동원되는 것이 일상화돼 있다. 중국이나 동남아 지역의 북한 식당에 가면 어김없이 한창 공부하고 꿈을 키워야 하는 꽃다운 나이의 처녀들이 식당 밖에는 자유로이 나가지도 못한 채, 손님들을 대상으로 공연을 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북한주민 스스로 공포와 궁핍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인권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포자기한 상태로 현실에 그냥 안주하는 셈이다. 북한당국은 더 이상 북한주민의 인권을 볼모로 외부세계에서 원조를 받으며 연명하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이는 북한 스스로 국가이길 포기하는 것이다. 국가의 최우선 책무는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이나 베트남과 같이 개혁과 개방을 통해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우여곡절 끝에 북핵 문제가 북한이 원하는 방향으로 해결된다 하더라도 인권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없다면 북한은 결코 국제사회의 건전한 일원이 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제 인권문제는 더 이상 특정집단에 행해지는 정치, 물리적 탄압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모든 인간들이 누려야 할, 당연히 받아야 할 권리가 됐다. 그리고 북한주민의 인권을 개선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은 바로 개혁·개방이다.
동용승/SERI 경제안보팀장 seridys@s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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