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이 균형발전특별회계자금을 쓴 정부 출연연구기관과 테크노파크 등을 대상으로 기획수사에 들어갔다는 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비리와 시스템의 개혁 문제가 구분돼야 하는데 뒤섞여 돌아가는 느낌이다.”-출연연의 모 부장
“과거 출연연의 영광은 다시 오지 않는다. 현재 처한 상황과 앞으로 갈 길을 한자성어로 말하면 居安思危(거안사위, 편안한 가운데 위기를 생각)와 各自圖生(각자도생, 스스로 살 방도를 모색) 두 단어로 집약할 수 있다. 스스로 살 궁리를 해야 한다.”-출연연 모 연구위원
기관에 따라 설립된 지 30∼50년된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초토화 일보 직전이다. 이미 대정부 여론은 격앙돼 있다. 거의 포기 수준이다. 누구를 어떻게 할 것인지 이전에, 왜, 무엇을 할 것인지부터 먼저 고민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근 정부가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대강당에서 개최한 ‘산업기술 출연연 기능 정립 및 활성화 방안 수립을 위한 토론회’에서는 발제 내용과 이를 받아들이는 노조원 간 불꽃 튀는 접전이 전개됐다. 접근점 자체가 달라 질의 응답 내내 이야기가 겉돌기까지 했다. 그만큼 감정의 골이 깊다는 방증이다. 그동안의 논의 단절이 가져온 당연한 결과다.
변화와 개혁에는 모두가 공감한다. 출연연에서도 달라진 현실과 미션을 인정하고 있다. 문제는 왜, 뭘 어떻게 할 것인지다.
“우선 여론수렴을 위한 공론의 장이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두 번째는 기관장이 움직여야 한다. 기관장의 임기를 보장해주고, 출연연이 변하더라도 그대로 복귀할 기회를 보장해 줘야 한다. 그러고 나서 변화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출연연에서 과기 정책통으로 통하는 모 기관장의 전언이다. 그는 정부가 해야 할 일에 한마디 더 거들었다. 연구회 한곳으로 출연연을 모으되, 무엇보다 비전과 미션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초분야든 응용분야든 제대로 된 비전과 방향, 로드맵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 정부의 전략과 전술의 부재를 꼬집었다.
대학과 출연연이 가야 할 방향을 밑에서 정하고, 위로 가며 논의의 가닥을 잡아야 하는데 지금은 위도, 아래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고 덧붙였다.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출연연을 향한 정책을 만들어 집행할 것이라면 최소한 밑바닥 여론 정도는 수렴해야 하는 것 아니냐. 최근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연구원 10명 중 8명이 정부의 개혁 일정이 너무 촉박하다고 지적한다. 제발 여론을 읽어달라.”
출연연의 모 노조 위원장의 이 같은 말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정부 측에서는 출연연을 버리자니 아깝고 가지고 가자니 불만인 ‘계륵’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출연연을 뒤흔드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정부가 주사위를 통에 넣어 흔든 뒤 높은 숫자만 나오게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판을 벌이고 있다면, 그건 바로 출연연을 놓고 벌이는 도박에 다름 아니다.
“정책을 펴는 데는 상하 간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아무리 합리적인 정책이라도 밑에서 따라가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현재 정부와 연구원 간 신뢰는 이미 깨진 상태다. 이를 복원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출연연의 어느 기관장 이야기는 조직 간 가장 기본적인 요소마저 실타래처럼 엉켜 있음을 보여준다.
과학기술이 정부의 실적 쌓기용이나 생색 내기용 도구로 전락해서는 결코 안 된다. 출연연의 역량이 커져야 국가 어젠다를 달성할 수 있다. 정부 혼자서 다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정부의 한마디, 행동 하나에 후손의 미래가 달려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박희범 전국취재팀장, hbp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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