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훈의 맛있는 영화]적벽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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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치의 혀로 손권을 설득하지요.’

 트로이, 십자군 전쟁과 함께 세계 3대 전투로 불리는 적벽대전이 마침내 스크린으로 부활했다. 오우삼 감독이 만들고 양조위, 금성무, 장첸 등이 출연한 ‘적벽대전: 거대한 전쟁의 시작’은 그동안 누구도 그려내지 못한 적벽대전을 우리의 눈앞에 펼쳐보인 것만으로도 그 존재의 의미가 있다. 역사에 기록된 적벽대전(赤壁大戰)은 ‘大戰’이라는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대단한 전투였다. 조조에 쫓겨 마지막 보루인 ‘신야성’마저 함락당해 다 죽어가던 유비. 모두가 그의 시대가 끝났다고 했지만 손권과 손잡고 조조의 100만 대군을 적벽에서 화공으로 수장시키면서 화려하게 부활한다. 이에 유비는 형주(荊州) 서부 세력을 얻어 손권, 조조와 함께 천하를 삼분한다.

 오는 7월 10일 개봉하는 적벽대전은 이야기 측면에선 별볼일 없는 작품이다. 1800년을 이어온 유명한 줄거리인데다 싸움의 결과가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총 800억원이 투입된 전투신은 적벽대전을 완전 리뉴얼한다.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2부작 중 전편인 이 작품에는 정작 적벽을 배경으로 하는 ‘海戰’은 등장하지 않는다. 거대한 전투의 시작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적벽대전은 앞으로 그려질 전투를 예고하는 작품일 뿐이다. 그러나 실망하긴 이르다. 성산의 호랑이 조자룡(후준)이 단기필마로 유비의 아들을 구해내는 장판교 전투, 제갈량(금성무)의 재치가 발휘되는 팔괘진 등 단 두 번의 전투가 등장할 뿐이지만 관객들이 느끼는 전투 체감도는 K1 이상이다.

 물론 이 모든 전투 장면은 오우삼의 솜씨다. 적벽대전의 전투신은 ‘영웅본색’을 만든 그의 능력이 아직 녹슬지 않았다는 것을 방증한다. 영화 초입에 등장하는 장판교 전투는 ‘삼국지: 용의 부활(4월 개봉)’의 그것과 완전 다르다. 조자룡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은 같지만 적벽대전이 한 수 위다. 이는 카메라의 위치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대개 영웅을 그리는 작품의 카메라는 인물의 아래나 혹은 위에 위치해 적을 왜소하게 만들고 영웅을 부각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오우삼은 다른 길을 택했다.

 적벽대전에서의 카메라는 더도 덜도 아닌 인물 눈높이에 배치된다. 눈높이 카메라(들고 찍기)의 장점은 마치 우리가 현장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생생함이다. 눈높이 카메라에 힘입은 조자룡은 장판교에서 다시 태어난다. 한 번에 3명 이상을 쓰러뜨리는 그의 칼은 과장과 현실의 이중주를 그린다. 바람을 가르는 검은 우리 앞을 지나가듯 섬뜩하면서도 지나간 자리에 쓰러진 적들의 모습은 현실 그대로다.

 제갈량의 팔괘진은 또 어떠한가. 오우삼의 전매 특허인 비둘기(첩혈쌍웅의 성당 장면을 생각해보라)가 날아다니며 시작되는 이 장면은 1편의 마지막으로 손색이 없다. 장판교 전투가 광활한 대지에서 그려지는 쫓고 쫓기는 싸움을 그리고 있다면 팔괘진은 거북이 등 모양의 밀폐된 공간에서의 벌어지는 육박전의 정수를 보여준다. 팔괘진에선 슬로 모션 카메라가 빛을 발한다. 느릿느릿하지만 힘 있는 카메라는 칼이 지나간 뒤 튀기는 핏방울 하나까지 촘촘히 기록한다. 일부 여성 관객이 눈을 감을 만큼 잔혹하지만 비장감은 어느 영화도 따라오지 못한다. 특히, 팔괘진 안에서 싸우는 유비, 관우, 장비의 움직임은 지루함을 느낄 새 없이 빠르다. 비록 1편에선 장첸이 분한 손권과 아시아 대표 모델 조미가 열연한 손상향의 활약을 볼 수 없지만 이 전투신으로 그나마 위안이 된다.

한정훈기자 exis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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