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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눈치 10단이다. 속도로 먹고사는 업종답게 참으로 빠르다. 알아서 기는 데는 이골이 난 탓 일까. 이동통신사업자들이 문자메시지(SMS) 요금 인하를 일제히 발표했다. 이명박 후보가 당선된 지 이제 일주일이다. 뜬금 없는 조치처럼 보이지만 정치적 배경이 깔려 있다. 이 당선자의 공약 가운데 하나가 ‘통신요금 20% 인하’였다. 확실히 경쟁력은 민간이 앞선다. 정부는 이제야 이 당선자의 국정철학을 뒷받침하기 위한 검토에 들어갔다. 부동산 세제며 교육제도까지 ‘우향우’ 자세를 갖추고 있는 정도다. 그래도 시선은 곱지 않다. 오랜만에 ‘선제적 방어’에 나선 사업자는 당혹스럽다. 시민단체들은 생색내기라고 비판한다. 투자회수기간도 끝난 SMS 요금은 더 내리거나 아예 무료화하라는 주장이다. 일부에서는 통신사업자들이 짜고 치는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한다. 인하 조건이 약속이나 한듯 비슷하다는 것이다. 차제에 한 해 4조원 이상을 마케팅에 쏟아붓는 대신 기본료 등 요금 전체를 내리라는 압박이 거세다. 어차피 신정부 공약이 20% 인하였으니 보조를 맞추라는 신호기도 하다. 사업자들이야 속이 뒤집어지겠지만 ‘소나기는 피하고 볼 일’이다. 조만간 유무선 대부분 사업자들이 ‘성의 표시’에 나설 것이다.
사실 국민이 체감하는 통신요금은 부담스럽다. 4인 가족이면 유무선 합쳐 평균 10만원은 훌쩍 넘는다. 그럼에도 통신요금이 대통령 공약사항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것도 20%라는 확실한 수치까지 제시했다. 정부와 당이 나서 관철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여론몰이는 물론이고 정책폭탄까지 투하할 태세다. 국민의 확고한 지지가 뒷받침되는 일이다. 거칠 것도 없다. 대운하 파겠다는 MB의 실천력이면 통신요금은 명함도 못 내민다. 통신업체들은 전전긍긍이다.
이런 모습은 참여정부의 ‘전공(?)’이었다. 선거철마다 어김없이 통신요금이 내려갔다. 당 혹은 청와대에서 미리 밝혔다. 부정적인 사업자에게는 전방위 압력이 가해졌다. 정부 눈 밖에 날 사업자는 없다. 그런데 그 효과는 어떠했을까. 소비지수에서는 분명 효험이 있지만 개개인이 지출하는 절대액에는 별 차이가 없었다. 정부에 ‘정책’이 있으면 기업에는 ‘대책’이 있다. SMS 요금 내리고 사회적 약자 배려하는 요금제를 출시하지만 새로운 상품으로 커버하면 그뿐이다. 기본료를 손보는 근본 처방 부재 탓이란 지적도 있다. 설사 기본료를 내리더라도 기업은 곧바로 만회할 것이다. 이런저런 신기술, 신상품 앞세워 총력 마케팅에 나설 것이다. 사용량을 끌어올려 수익구조를 맞추는 일도 병행한다. 선거때마다 요금을 내렸지만 사업자는 매출과 수익에 큰 타격은 없다. 원인은 무엇인가. 시장의 핵심인 요금을 정치적 판단으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통신사업을 국유화하면 모르되 시장 메커니즘을 무시하면 요요현상이 필연적이다. 아파트 값 잡겠다며 거꾸로 두배 이상 올려 놓는 이유와 똑같다.
이 당선자는 시장 친화적, 기업친화적 정부를 꾸린다고 한다. 마침 인수위도 떴다. ‘표’ 의식한 공약은 재검토할 단계다. 7% 경제성장 공약이 대표적이다. 통신요금 20% 인하의 경우 무게중심을 설정해야 한다. 20% 끌어내리는 것일 수도 있다. 가상사설망사업자(MVNO)를 도입해 경쟁을 통한 자연적 인하 유도에 치중할 수도 있다. 수치에 목매면 참여정부의 부작용과 후유증을 답습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경쟁시키고 시장에서 결정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다. 언제까지 통신요금이 정치인 호주머니에 있어야 하는지 자문할 때인 것이다. 국민 이기는 정부 없지만 시장 이기는 정부도 없다.
이 택 논설실장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