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대체 누가 되는 겁니까.” “이명박은 BBK 의혹에서 견뎌낼까요.” “이회창은 그렇다 쳐도 정동영은 기밀정보를 한손에 쥐고 있는 여권인데 과연 ‘한 방’이 있겠죠.” “낸들 압니까, ‘며느리도 모르는 것’이 이번 대선인데….” 요즈음 기업인과 만날 때마다 반복되는 일상사다. 언론인이면 무언가 장막 뒤의 속사정을 꿰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숨겨진 질문에 대답은 고작 이 수준이다. 대선의 계절답게 IT기업인조차 ‘선거’를 인사말로 대신한다. ‘우문우답’의 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이야기는 꼬리를 문다. “나라의 먹거리를 고민하는 후보가 없는 것 같아 불안합니다.” “전 세계를 상대로 하루하루 전쟁을 벌이고 있는 IT쪽은 아예 사라졌어요, 아직도 반부패·대운하·민주개혁 같은 20세기적 이데올로기 싸움만 판을 치니….” “그 양반들, 자식 조기유학 보내는 우리 심정 알기나 하면서 나라 맡겠다고 목청 높이나요.” 언론인도 한자락 걸친다. “동감입니다. 디지털 전쟁에 아날로그 화약냄새만 진동하니 걱정입니다.”
IT종사자에게 벤처 육성하고 규제 완화하며 고급두뇌 양성하겠다는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다. 성장동력 찾아내고 세계 최강 IT강국 만들겠다는 말도 이제는 지겨운 레퍼토리가 됐다. 사실 IT에 관한 한 공약은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대통령이 어떤 철학을 가졌건 IT종사자는 늘 한발 앞서 갔다. 생존을 위한 경쟁력 확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떠안고 사는 사람이다. 정치가, 권력이 간섭하고 끼어들면 오히려 뒤로 간다. IT는 창의력과 열정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정치와 권력에 원하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공정한 심판 역할이다. 기회와 경쟁의 균등성을 보장하라는 말이다. 대기업에 차별받고 횡포 당하는 중소업체가 있다면 제도적으로 바로잡아주면 된다. 정보와 마케팅 능력 부족을 호소하는 약자에게는 부축해줄 정책이 뒤따라야 한다. 자금 및 세제지원이 곧 산업 육성이란 패러다임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독과점 기업의 시장 약탈적 행위는 제어해야 한다. 반대로 정치적 논리에 따른 시장 왜곡은 막아야 한다. 기업 살리고 소비자 편익이 높아지도록 엄정한 심판이 돼 달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사람이다. IT관련 석·박사 정원 늘리고 맞춤형 교육을 한다고 달가워하지 않는다. 사회적·산업적 토양이 너무 척박하다. 수만명의 똑똑한 젊은 인재가 ‘벤처’와 ‘개발자’라는 이름으로 무자비한 중노동에 내몰리고 있다. 쥐꼬리 월급에 하루 20시간 연구하는 IT 고급두뇌가 허다하다. 그에게 “그래도 너희는 대박의 꿈이 있다”고 한다면 그건 비아냥이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우리 젊은이가 ‘처지’를 한탄한다. 틈만 나면 미국이건 캐나다건 일본이건 옮겨갈 생각뿐이다. 아예 초·중·고에서부터 유학이 트렌드다. 해외두뇌는 돌아올 의사가 별로 없다. IT산업의 성장엔진이 식어가고 있다. 이들에게 모티브를 주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생활비’ 제대로 주면서 글로벌 인재로 키워갈 방법은 많다. 21세기 대한민국 정부의 역량으로 그 정도도 감당 못한다면 말이 안 된다.
마침 20∼21일 IT단체가 주관한 대선후보 초청 IT정책포럼이 열렸다. 이명박·정동영 두 후보의 IT철학과 공약이 공개됐다. 백화점식 나열이라는 비판도 따랐지만 유력후보의 IT관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비전도 발견했다. 하지만 IT종사자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거대담론이 아니다. 한 가지라도 좋으니 아주 사소하지만 구체적인 과제를 듣고 싶다. IT에 대한 지도자의 진정성이 묻어 나오는 공약이다. 선거는 아직 한 달이나 남았다. 지도자라면, IT종사자를 춤추게 하라.
이택 논설실장 etyt@et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