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종이의 음모

 영국 런던 증권가에 있는 한 커피하우스. 복서 출신 탐정인 벤자민 위버가 친구의 말을 귀담아 듣든다. "모르겠나, 위버. 이 금융기관들은 우리 은화를 가치 없게 해 은화의 자리를 가치에 대한 약속을 적은 종잇 조각이 대신하게 만드는 거네. 만약 그들이 가치에 대한 약속을 자기들 맘대로 통제하는 그 때 나라 전체의 부를 마음대로 통제할게 될 걸세."

 최초의 주식 폭락 사태를 불러온 1720년 영국 남해회사 주식 조작 사건을 모티브로 한 역사 금융 스릴러 ‘종이의 음모’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2000년 에드거 상 최고 소설상을 받은 작가 데이비드 리스의 데뷔작이다.

 당시는 금과 은도 아닌 회사 채권이 가치를 지니기 시작했다. 단지 종이일 뿐이지만 ‘약속’을 담으면서 가치를 갖게 됐다. 실물 자산이 없이도 정보로 돈을 벌 수 있는 이른바 ‘신경제 시대’가 당시 열렸다.

 남해 회사와 결탁한 일부 증권 중개업자들이 헛소문과 작전으로 주식 가치를 조작했으며 결국 회사가 망하고 수많은 개인 투자자들을 파산시켰다.

 거의 300년 전 얘기이지만 지금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지저분한 런던 거리가 깔끔한 월스트리트로 바뀌었다는 점이 다를까.

 지금도 주식시장에는 ‘정보’라는 이름으로 소문이 판친다. 일부 투자자들은 주가를 조작하기 위해 작전을 펼친다. 기간투자가들은 드러내지 않지만 머니 게임을 벌인다. 그 와중에 ‘개미’들만 피해를 본다. 개인투자자의 행동 역시 지금과 똑같다. 증권으로 망해 자살까지 하는 일은 당시에도 있었다.

 주인공 벤자민 위버만이 의연하다. 그는 지금으로 치면 ‘해결사’에 가까운 인물로 적당히 세상사에 물들었지만 ‘노력한 만큼 이외의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를 신조로 삼았기 때문이다.

 엔캐리와 프라임모기지 사태 여파로 세계 주식시장이 요동친다. 우리 주식시장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시장이 혼란스럽다해도 금리의 두세배 정도의 이익에 만족하면서 정석대로 회사 실적을 보며 장기 투자하는 사람은 큰 손해를 보지 않는다. 종이의 음모라지만 그 음모에 휘말리게 만드는 건 결국 지나친 욕심일 뿐이다.

  신화수기자@전자신문, hs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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