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관행의 대가

 외국계 IT기업의 몸 낮추기가 한창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인텔·HP·퀄컴 등 세계 IT시장을 호령하고 있는 기업의 위상치고는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다. 검찰과 공정거래위원회 등의 수사와 조사가 계속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동병상련이건만 서로 속 터놓고 이야기할 상황도 아니다. 오히려 상대방의 조사결과로 더 큰 피해를 보지 않을까 하는 눈치보기가 계속된다. 여기에 외국계 기업이기 때문에 더 큰 낭패를 당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도 적지 않다.

 일단 MS 문제는 일단락됐다. 공정위가 2005년 12월 끼워 팔기에 과징금 324억9000여만원과 함께 윈도와 메신저를 분리하는 등의 방법으로 시스템을 시정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MS가 시정명령 취소 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 16일 선고를 하루 앞두고 소송을 취하했다. 공정위도 여기에 동의함으로써 거의 2년 만에 종료됐다. 그러나 벌써 국내 기업들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등 후유증이 심상치 않다.

 공정위는 MS 말고도 인텔과 퀄컴 등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조사를 2년 가까이 진행해오고 있다. 인텔이나 퀄컴도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으나 MS와 마찬가지로 공정위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으리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한국HP에 대한 검찰 수사도 계속되고 있다. 총판업체의 공공기관 납품비리에 횡령까지 더해졌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돌고 있다. 한국HP는 투명한 영업거래를 해왔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될 것 없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수사결과에 따라 과거 IBM이 공공기관을 상대로 금품로비 등을 벌인 것과 같은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올 수도 있지 않으냐는 우려도 적지 않다. 아직도 수사는 계속되고 불똥이 어디까지 튈지 한국HP나 총판 모두 전전긍긍하고 있다.

 본사의 태도는 한국법인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한국지사에 대한 규제와 감사가 상시로 이루어질수록 한국지사의 입지는 이에 정비례해 위축되고 있다. 문제를 일으키면서까지 한국에서 사업을 확대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게 본사의 시각일 것이다. 상황이 이러니 입이 있어도 말할 수 없는 처지라는 한 외국계 기업임원의 토로는 충분히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물론 사태가 이렇게까지 확대된 일차적인 책임은 당연히 외국계 기업에 있다. 하지만 낙후된 우리의 IT시장 환경이 이들의 잘못을 유도하지 않았는지는 반성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와 관련해 한국을 방문한 본사 임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어떻게 이런 시장환경에서 영업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토로할 정도라고 전해진다. 최저입찰제에 그나마도 사전영업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사업을 할 수 없는 게 한국의 IT시장이다. 한국에서 사업을 계속해야 하는 외국계 IT기업은 모든 잘못을 지고 가야 한다. 불법이나 편법으로 한국에서 돈만 벌어가는 기업이라는 인식이 확산하는 것만은 어떻게든 막아야 하는 게 현재 이들에게는 최선이다. 한국은 이제 지는 시장이며 한국에서 IT사업을 벌인다는 것은 진흙탕에서 싸우는 것과 같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세계 IT시장에서 심어진다면 한국 IT산업의 미래는 없다.

 외국계 한국법인의 위축은 당장 우리나라 고객의 피해로 이어진다. 마케팅이 축소되고 고객 지원 또한 소홀해지기 때문이다. MS는 공정위의 결정에 승복하면서 그 배경으로 한국의 IT산업계나 공정위와 긴밀히 협조하면서 우리나라 IT산업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그들의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지만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새로운 상황을 기대하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외국계 기업들을 둘러싼 모든 수사와 조사가 철저히 그러나 조기에 마무리되기를 바라는 이유다. 외국계 IT기업이 다시 정상적인 영업과 마케팅활동을 벌일 때 한국의 IT산업도 다시 한번 바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양승욱부국장@전자신문, swyang@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