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청바지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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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처럼 모든 것이 빠르게 바뀌는 세상에서 청바지만큼 세대를 뛰어넘어 인기를 끄는 것도 없을 것 같다.

 원래 청바지는 ‘잘 닳지 않는 튼튼한 작업복’으로 고안됐으나 수십년간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면서 이제는 평상복으로, 레저복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즐겨 입는 패션 아이템으로 굳건히 자리를 잡았다.

 나는 대학 때부터 유난히 청바지를 좋아했다. 대학 4년 동안 청바지를 교복처럼 입고 다녔으니 말이다. 단순히 의복으로 청바지를 좋아했던 것에서 벗어나 청바지는 내게 ‘일탈’의 기쁨을 맛보게 한 ‘이브(Eve)’와 같은 존재기도 했다. 청바지를 전 세계 젊은이의 문화로 승화시킨 미국 영화배우 제임스 딘이 젊음의 일탈과 반항을 대변하는 아이콘이었음을 생각하면 원래 청바지가 그런 속성을 지닌 것인지도 모르겠다.

 대학 다닐 때였다. (같은 연배라면 누구나 기억하겠지만) 말머리가 그려진 브랜드의 청바지가 인기였는데 가격이 다른 청바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쌌다. 80년대 초는 한창 좌파 이념이 대학생들을 사로잡던 시기였던지라 값비싼 유명 브랜드의 청바지를 입는 것만으로 선후배들의 못마땅한 시선을 받기도 했다. 그때는 그랬다. 입학 첫날부터 입고 싶던 그 청바지를 사지 못하고 속앓이를 했던 것은, 비싼 가격 탓도 있었지만 20여년을 ‘범생이로 사는 법’을 주입식으로 교육받고 살아온 때문이기도 했다. 주위 눈치를 살피느라 그 청바지를 마음 속에만 담아두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나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JDC’ 청바지를 사 입었다. 내 기억으로는 내가 속한 집단의 암묵적으로 공유된 가치관을 어긴 첫 번째 일탈이 아니었던가 싶다. 너무 거창한 정의기는 하지만 말이다.

 두 번째 나의 일탈은 ‘찢어진 청바지’로 다시 발현이 됐다. 6, 7년 전이었다. 언제부턴가 이른바 ‘빈티지’ 패션이라 해서 낡고 해진 듯한 옷이 인기를 끌었는데 청바지가 그 대표격으로 패션을 주도했다. 처음 찢어진 청바지를 보았을 때 느꼈던 그 자유로움이란! 정장을 벗고 청바지를 입는 것만으로도 바람을 가르는 자유를 맛보았다면 ‘찢어진 청바지’는 그를 능가하는 유연함과 멋스러움이 느껴졌다. 하지만 당시 30대 중반을 넘어선 나이에, ‘고객’과 늘상 미팅을 해야 하는 자리에서 선뜻 입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느 날, 다시 학생으로 돌아가기로 결심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드디어 몇 달을 열망하던 ‘찢어진 청바지’를 입게 됐다. 남의 시선 따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소 무리가 있는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다니며 쉽지 않았던 ‘지각 유학’의 결심을 다지곤 했던 것이다.

 일상생활 속의 패션 아이템으로 청바지를 좋아하는 것에서 한 걸음 나가 비즈니스도 청바지처럼 하고 싶다. 청바지는 사실 ‘기업가 정신’에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이라고 할 수 있다. 청바지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청바지는 원래 미국의 서부개척시대와 맥락을 같이한다.

 당시 미국 캘리포니아는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금광을 발견하기 위해 미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도전과 모험에 바탕을 둔 기업가 정신이 충만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진짜 성공적인 비즈니스로 탄생한 것은 ‘청바지’ 사업이었다. 청바지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레비 스트로스(Levi Strauss)는 어느날 금광촌의 인부들이 늘 해어진 바지 꿰매기에 여념이 없는 것에 착안해서 천막을 만드는 천으로 쉽게 닳지 않는 바지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골드러시로 몰려든 사람들 가운데 실제로 금맥을 찾아 성공한 사람의 수십 배에 이르는 사람들이 청바지를 사서 입게 됐으니 청바지가 얼마나 성공적인 비즈니스였을지 짐작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청바지의 교훈은 100년이 넘는 역사 동안 이룩한 혁신성이다. 처음에는 작업복으로 시작해서 누구나가 즐겨 입는 품목으로 시장을 넓힌 것도 소재와 디자인 측면에서 끝없는 혁신을 계속한 덕이었다. 이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들도 청바지에 관심을 가져 이른바 ‘명품 청바지’도 등장하고 있다.

어쩌면 제임스 딘의 현실에 대한 반항이 ‘혁신’의 한 축이기 때문이 아닐까.

이지선 <미디어U 사장>easysun@media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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