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무임승차’

 “미안하다. 나는 무임승차했다.” 조정남 SK텔레콤 부회장은 직원들을 만나면 곧잘 이런 말을 한다고 한다. 직원들의 창의력과 열정이 없었으면 오늘날의 자신이 없었을 거라는 겸양의 표현으로 들린다. 42년의 직장생활, 10년의 CEO 경력이 말해주듯이 조 부회장은 우리나라 최고의 CEO로 통한다. 그를 빼놓고는 샐러리맨의 성공신화를 얘기하기 힘들다. 직장인은 그에게서 선망의 수준을 넘어 일종의 경외감마저 느낀다. 이런 그가 자신의 성공을 ‘무임승차’라는 말에 빗대어 표현했으니 얼핏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난주 본사 후원으로 열린 통일IT포럼에서 조 부회장은 무임승차론을 놓고 자신의 소회를 밝혔다.

 “‘TTL브랜드’ ‘네이트’ ‘컬러링’ ‘준’ ‘싸이월드’ ‘멜론’ ‘TU미디어’ 등등, SKT가 내놓은 이들 서비스는 국내 IT업계의 지형도를 크게 바꿔놓았다. 중요한 것은 이 사업 아이디어 대부분이 직원들의 머리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TTL브랜드 광고를 처음 직원들이 들고 왔을 때 젊은 감각을 이해하지 못해 당혹스러웠고 위성DMB사업에 진출할 때는 썩 내키지 않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전 국민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붉은악마의 길거리 응원도 직원들의 번뜩이는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나는 직원들을 믿고 그들의 ‘의욕’을 관리했을 뿐이다” 그러니 자신은 무임승차한 것 아니냐는 변(辯)이다.

 물론 그의 무임승차론을 100% 수긍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그들의 창의성과 열정에 신뢰를 보내고 지지해주는 것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직원들의 창의력과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소통되지 못하면 기업의 역동성은 떨어진다. 우리나라 월급쟁이 가운데 4% 정도만 출근하면서 ‘머리’를 갖고 오고 나머지는 집에 놓고 온다는 말이 허언(虛言)이 아니다. 조 부회장은 직원들이 창의력을 발휘해야 회사에 희망이 있다고 믿는 경영자다. 또 직원들의 ‘의욕관리’를 잘해주는 게 경영자의 중요한 덕목이라고 여긴다.

 조 부회장의 얘기를 꺼낸 것은 우리 시대 CEO의 중요한 덕목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고민해보고 싶어서다. 엄청난 경쟁과 난관을 극복하고 정상에 오른 사람의 성공스토리는 우리에게 존경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들의 성공스토리 속에는 인생을 개척하려는 남다른 의지와 미래를 향한 신념이 녹아 있다. 또 결정적인 순간에 주변사람에게 도움을 받거나 운(運)이 따라주기도 한다. 대부분 성공한 CEO 또는 벤처 사업가의 인생 역정 역시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리라고 본다. 하지만 종종 자신의 공치사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CEO나 기관의 장(長)을 만나는 때가 있다. 그들의 성공 스토리에는 직원들의 자리가 별로 없다. 직원들의 창의력과 열정은 구석에 밀려나 있다. 오로지 자기과시와 수직적인 인간관계만이 있을 뿐이다. 내막을 정확히 모르는 외부 사람은 그 언변에 속절없이 넘어간다. 사실 저런 자신감이 어디에서 나오는걸까 부러울 때도 있다. 또 그런 자신감과 자기과시가 경쟁력이 되기도 하는 세상이다.

 바람직한 경영자상(像)은 무엇일까. 매사가 그렇듯이 정답은 없다. 다만 구성원들의 열정과 창의력을 소중히 여기는 경영자가 많아질수록 기업에 희망이 넘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조 부회장의 ‘무임승차론’을 그냥 흘려버리지 못하겠다.

◆장길수 논설위원 ksj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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