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트랜드]인터넷과 미국의 지식패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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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세계 군사질서나 세계 경제질서를 논하듯이 세계 지식질서의 윤곽을 그려보면 어떤 모습일까. 지정학(geo-politics)이나 지경학(geo-economics)을 넘어서는 이른바 ‘지지학’(geo-knowledge)의 시각에서 세계지도를 그려볼 수 있을까. 최근 과학·기술·정보·지식(통칭해 지식)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지식 경쟁력의 관점에서 본 국가 순위의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 21세기의 핵심적 권력자원인 지식을 놓고 벌이는 판세의 변화가 군사·외교·경제·문화 등 세계 질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렇게 새롭게 짜이는 21세기 지식질서에서 세계패권을 장악하고 있는 나라는 단연코 미국이다.

 현재 데이터 전송에 필요한 국제 인터넷망은 미국을 허브로 해 구축돼 있어 유럽과 아시아 및 태평양 간의 교류량은 미국과 이들 세 지역 간 교류량의 약 3분의 1에 불과하다. 인터넷의 국내 보급률 면에서도 미국은 한국·스웨덴·아이슬란드 등 몇 나라를 제외한 세계의 모든 나라에 앞서 있다.

 단편적인 수치를 넘어서 미국이 지식질서를 장악하고 있다는 증거는 여러 분야에서 발견된다. 무엇보다도 미국은 반도체·컴퓨터·소프트웨어·인터넷 등과 같은 IT산물을 최초로 구상하고 개발한 나라며 이를 활용, IT산업을 일으키고 디지털 경제의 붐을 일으킨 나라기도 하다. 그야말로 미국은 정보화시대의 구도를 잡고 밑그림을 그리고 기본 채색을 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정보화시대의 지식질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위상을 엿볼 수 있는 사례를 하나 더 들어보자. 예를 들어 인터넷을 사용해 정보를 찾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gateway)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먼저 컴퓨터의 전원스위치를 켜야 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 컴퓨터 운용체계를 부팅하고 웹브라우저의 아이콘을 클릭하고 원하는 사이트의 인터넷주소를 입력하거나 아니면 정보검색 사이트를 찾아가서 검색창에 원하는 검색어를 입력하는 순서가 될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러한 인터넷의 관문을 장악하는 문지기가 대부분 미국 기업(또는 기관)이라는 사실이다.

 컴퓨터 사용자의 대다수가 미국의 대표적 IT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운용체계와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사용한다. 인터넷 주소체계는 ICANN이라는 미국에 기반을 둔 기관이 관리한다. 우리가 가장 흔히 접하는 정보검색 사이트도 구글이나 야후와 같은 미국의 기업이 운영한다. 이러한 관문을 장악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이들 프로그램이 바로 우리가 정보를 수집해 지식을 생산하고 전파·소비하는 과정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코드나 소프트웨어 알고리즘 또는 기술표준의 형태로 존재하는 이러한 프로그램은 인터넷에서 우리가 얻고자 하는 정보나 지식, 그 자체는 아니다. 이러한 정보와 지식에 ‘표준’을 제시하고 ‘질서’를 부여하는 기술지식의 체계일 뿐이다. ‘지식에 대한 지식’이라는 의미로서 ‘메타지식(meta-knowledge)’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메타지식은 인터넷이라는 경기의 장에 ‘게임의 규칙’을 부과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인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유리하게 ‘게임의 규칙’이 프로그래밍돼 있다면 싸움을 벌여보기도 전에 이미 승패가 갈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들 프로그램은 정보화시대의 ‘보이지 않는 권력’의 메커니즘을 대변한다.

 요컨대 미국은 새롭게 짜이는 21세기 지식질서의 허브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보이는 부분’에서 미국이 행사하는 지식패권은 빙산의 일각인지 모른다. 수면 아래 빙산의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는 좀 더 위협적인, 그러나 더욱 은밀한 지식패권의 재생산 메커니즘이 진행되고 있다. 만약 부지불식간에 상대방을 홀리게 하는 권력의 묘약이 있다면 이는 백 번 싸우는 것보다 더욱 효과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모습을 감춘 지식패권의 존재를 뚫어보려면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마법의 천리경이라도 마련해야겠다.

◆김상배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sangkim@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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