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형 로봇 개발 및 보급 촉진을 위한 특별법’을 두고 산업자원부와 정보통신부가 다시 맞붙었다. 산자부는 연내 통과를 외치고 있다. 정통부는 제정 반대를 주장하고 있다.
산자부는 차세대 성장동력인 로봇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특별법 제정이 시급함을 주장하고 있다. 정통부는 특별법이 로봇산업에 예산을 지나치게 배정하는데다 정부의 지나친 개입이 오히려 민간의 자율적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고 비판한다. 지난달에는 국회가 공청회까지 열었지만 합의점을 찾기는커녕 확연한 시각 차이만 확인했을 뿐이다. 이대로라면 합의점을 찾기는 어려울 성 싶다.
이 법안은 당장 12일에 국회 산자위에 상정된다. 15일에는 국회 법사위 소위로 넘어간다. 법사위 소위가 논란과 갈등을 빚어내고 있는 이 법안을 어떻게 처리할지도 관심사다. 대선정국에 정신이 팔려 있는 국회가 심의를 할지조차 모를 일이기는 하지만.
산자부와 정통부는 과거 차세대 성장동력 선정 때에도 로봇산업의 주무권을 놓고 치열한 일전을 치뤘다. 1차전에서는 무승부를 기록했다. 논란의 불씨를 숨겨둔 채 어정쩡한 합의점을 찾았기 때문이다. 지능형 로봇은 산자부가, 네트워크형 로봇은 정통부가 맡기로 했다.
꺼지지 않은 불씨는 언젠가 다시 타오르기 마련이다. 두 부처는 특별법 제정을 계기로 다시 2차전을 치르는 중이다. 대의명분이나 논리가 어떠하든 이번 갈등과 대립의 본질은 하나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이기심이다.
양 부처는 지금 찬성과 반대의 논리를 조목조목 열거하는 데 여념이 없다. 따지고 보면 양 부처의 논박은 삼척동자도 웃게 만들 정도로 설득력이 빈약하다.
우선 예산 집중과 정부의 지나친 개입 우려의 문제다. 이를 문제 삼고 있는 정통부도 실상 자신이 주관하는 분야에서는 가능한 예산을 많이 배정하려 한다. 예산이 많아질수록 정부의 개입은 늘어나게 마련이다.
산자부 장관이 주관하는 로봇 산업위원회를 국무총리 산하에 두도록 하는 내용과 로봇연구기관인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신설을 놓고 옥상옥 주장은 어떠한가. 이러한 내용과 규정은 대부분의 산업특별법에는 공통적으로 포함돼 있다. 로봇 특별법에만 특별히 담겨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정통부가 로봇 특별법안을 만들었어도 똑같은 내용이 포함됐을 것이다. 정통부가 주관하는 산업 특별법에도 이런 규정은 얼마든지 있으며 이미 산하에 진흥원도 여럿 두고 있다.
결국 내가 하면 되지만 남이 하면 안 된다는 논리다. 마찬가지로 산자부라고 다를 바는 없을 것이다. 만약 정통부를 주무부처로 하는 로봇 특별법을 제정하려 한다면 똑같은 이유로 쌍수를 들고 반대할 것이 자명하다.
새로울 것도 없다. 지난 몇년간 산업정책과 관련한 새로운 법 제정이나 제도 개편 때마다 반복돼 온 일이다. 각 부처는 일이 벌어질 때마다 똑같은 주장과 논리를 시각에 따라 바꿔가며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이로 인해 IPTV법·정보보호기본법 등은 국회에서 수년째 잠만 자고 있고 u시티지원법 등 신설 법안은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산업계와 국민은 이제 지겹다 못해 시니컬하기만 하다. 각 부처가 어떤 명분과 논리를 내세우든 관전자는 또 시작했구나 하며 쓴웃음만 짓는다. 마치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대량살상무기를 폐기하지 않아 이라크를 공격했다는 미국의 소리에 지구촌 사람이 빙그레 웃기만 하는 이치와 같다. 아무리 거창한 명분을 내세워도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한 진짜 이유는 석유 때문이라는 걸 다 안다. 로봇 특별법 제정과 반대를 외치며 싸우는 두 부처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도 이와 다를 바 없다. 주무부처가 어디가 됐건 빨리 해결됐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유성호 디지털산업팀장 sh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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